[동네뉴스] 82세 이녹자 어르신의 첫 전시회

  • 천윤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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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27 10:56  |  수정 2024-03-06 09:18  |  발행일 2024-03-06 제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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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세의 이녹자 어르신이 경북 경산역 맞이방에서 '가족'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아이들을 키울 때가 좋았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동물들을 주로 그렸지만 '가족'을 주제로 삼았지요. 젊은이들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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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녹자 어르신이 축하 꽃다발을 받고 가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82세 이녹자 어르신(부산)이 경북 경산역 맞이방에서 열고 있는 '소박한' 전시회(28일까지)가 열차 이용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어미닭과 병아리, 소와 말, 돼지, 오리, 참새 등을 세밀하게 그린 그림에는 '애기들을 많이 낳아야 될텐데' '아들 딸 손자손녀 며느리 잘 커줘서 고맙다' '우리 국민도 장닭처럼 열심히 살아봅시다' 등 감사와 소망을 담은 글이 적혀 있다. 전시회 주제가 '가족'인 이유를 짐작케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학업을 이어가지 못해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결혼을 해서는 생활에 바빠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붓을 들게 된 것은 70대가 되어서다.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만학으로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부산예술대에 진학해 뒤늦게 미술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2022년 졸업한 그는 주변에서 전시회를 열어 보라는 권유를 받던 중 경산에 사는 홍순영 통합미술교육협회 수석총괄교수의 주선으로 경산역 맞이방에서 생애 첫 전시회를 마련하게 됐다. 개막일에는 증손자까지 포함해 무려 20여명의 가족이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 와 축하를 해줬다.

전시장 한쪽에 마련된 탁자 위 방명록에는 꽃다발과 열차를 타고 오간 승객의 격려 글이 빼곡하다. 특히 화가가 80대 할머니라는 사실에 감탄했다. 어느 초등생은 "그림을 보니 기운이 납니다. 다른 멋진 그림도 그려주세요. 건강하세요"라고 적었고, 또 다른 이는 "세밀한 어르신의 그림에 감탄이 갑니다. 계속 작가로서 활동하시길"이라며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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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녹자 어르신이 미술지도를 한 홍순영(오른쪽) 교수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 그림지도를 하며 할머니의 재능을 발견한 홍순영 교수는 "우리 사회가 어르신을 보호와 요양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게 안타깝다"며 "건강한 어르신이 사회활동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만학으로 공부하는 분이 많은데, 전시와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았으면 좋겠다. 경산역 측에서 전시공간을 마련해 주고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이 지루하지 않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해줘 고맙다"고 했다.


글·사진=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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