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시선] 파렴치한 국회의원 특권, 더이상 안된다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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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10 20:05  |  수정 2024-03-10 20:10  |  발행일 2024-03-11 제22면
'국민의 머슴' 외치는 정치
선거 끝나면 특권에 집착
사회적 가치 보다 '권력몽'
특권 폐지 약속 신뢰 잃어
국민운동으로 카르텔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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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 편집국 부국장

정치인들은 때로 '국민의 머슴'임을 자처한다. 선거철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4·10 총선을 앞두고도 심심찮게 나온다. "국민의 지배자가 아니라 머슴"이라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한다.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말인데,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없다. 으레 그러려니 할 뿐이다.

 


단언컨대 국회의원이 국민의 머슴인 적은 없다. 선거만 끝나면 머슴은커녕 '상전'이 된다. 상전도 보통 상전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을 보면 기가 차다. 서민들은 꿈도 못 꾼다. 국회의원 특권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180개가 넘는다. 불체포 특권, 면책 특권은 대표적이다. 횡령, 사기, 뇌물수수 등의 범죄를 저질러도 구속되지 않는 게 국회의원이다. 막말로 상대방의 명예에 치명적 타격을 가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으면서 KTX 특실, 비행기 비즈니스 석을 공짜로 이용한다. 인천국제공항의 귀빈실과 귀빈 주차장도 무료로 이용한다. 보좌진을 9명 둘 수 있고, 의원 사무실 지원 경비로 1억원을 받는다. 후원금으로 매년 1억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을 챙길 수 있다. 국회의원의 연봉은 1억5천만원이지만, 이런저런 혜택을 합치면 실질 연봉은 5억원이 넘는다. 직업도 매력도가 최상이다. 기를 쓰고 국회의원이 되려는 상황이 이해가 되는 특권들이다.


최근 한 언론에서 인터뷰한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최연혁 교수에 따르면 "스웨덴 정치인들은 특권을 누릴 생각이 없다. 국민도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 유력한 총리 후보였던 여성 정치인이 주차 위반 문제로 낙마한 사례도 소개했다. 작은 스캔들에도 연루되면 스스로 옷을 벗기 때문에 국회 윤리위원회를 열 필요도 없다고 했다. 중대범죄를 저질러도 온갖 변명으로 빠져나가려는 한국 정치인과 비교하면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는 입법으로 가능하다. 국회의원이 변해야 한다는 것인데, 기대하기 힘들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는 어제 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선거 때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다루지만, 금세 '자신들의 특권 리그'에 방어벽을 친다. '국민을 개, 돼지로 보는 것이냐'는 외침에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정치적 문제로 맨날 싸우면서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는 기민하게 단합한다. 국회의원 특권만을 보더라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정치는 실패했다. 정치의 실패는 곧 말의 실패다. 말이 실패한 것은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게 국회의원들이다. 조선시대 양반을 비판할 때 언급되는 '권력 투쟁에 몰두하면서 교묘한 도덕정치의 말로 위장하는 무리들'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는 국회의원에게만 맡길 수 없다. 때마침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치개혁'을 약속했다. 불체포 특권 포기, 금고형 이상 확정 시 세비 반납, 출판기념회 정치자금 수수 금지 등을 공약했다. "국회의원의 직업적 매력도를 하향하겠다"고도 했다. 부족하다. 180여 개에 달하는 국회의원 특권을 그냥 두고 정치 개혁은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사람을 보면 공직 등을 마치고 '권력이나 한 번 잡아보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TK(대구경북)가 특히 그렇다. 오죽하면 '고관대작 정치'라는 말이 나왔을까.


권력 보다 사회적, 정치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국회에 모으려면 우선 특권 폐지 전통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분위기는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다. 특권 폐지당(가칭)이 창당될 움직임이고, 한 시민단체는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촉구라는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국회의원을 머슴으로 부리겠다는 '국민적 각성'이 절실하다.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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