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구 순종 황제 동상 철거, 늦었지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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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22 06:58  |  수정 2024-04-22 07:00  |  발행일 2024-04-22 제23면

대구 중구 달성공원로 8길에 설치돼 있는 순종 황제 동상이 이번 주에 철거된다. 지난 17일 중구청 공공조형물심의위원회가 역사 왜곡 논란을 종식시키는 한편 교통 혼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순종 어가길 조형물을 철거키로 결정한 것이다. 순종 동상은 설치 때부터 친일 행위를 미화한다는 주장과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목소리가 맞섰다. 2017년 중구청은 70억원을 투입해 수창동에서 인교동에 이르는 2.1㎞ 구간에 순종 어가길을 조성하면서 2억원이 들어가는 동상도 설치했다. 어가길은 1909년 순종이 대구를 다녀간 것을 재현해 달성공원 일대를 테마거리로 만든 것이다. 순종은 일본의 강압에 못 이겨 대구·부산 등지를 순회했는데, 그곳에 동상을 만드는 것은 친일행위를 미화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드셌다. 동상 설치 당시의 중구청은 다크 투어리즘이라며 비판에 대응했다.

다크 투어리즘은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보존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때 400만명이 학살당했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대표적인 장소다. 그런데 어가길은 참상이 벌어졌던 공간이 아니라 일본이 우리에게 행했던 수많은 강압 행위가 벌어졌던 장소 중 하나다. 다크 투어리즘의 옷을 입혀 관광의 소재로 활용하려는 취지는 이해된다. 하지만 세금을 투입하면서까지 동상을 설치한 것은 다크 투어리즘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것이다. 다크 투어리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동상 설치 및 철거까지 6억원의 세금을 낭비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번 일이 다크 투어리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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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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