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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공원 초입에는 높이 3m, 길이 20m의 벽면에 벽화가 조성되어 있다. 사선대 설화의 주인공인 네 신선과 네 선녀들이다. |
임실의 북부인 관촌면 관촌리, 고려시대부터 역이 있었다는 마을이다. 동쪽으로 진안에 접해 있고 북쪽의 호남정맥 슬치를 넘으면 완주다. 지금도 역이 있고 국도와 지방도가 난달인 교통의 요지다. 고추가 그려진 장터가 있다. 고추가 특산물인가 보다. 5일 10일이 장날이라 오늘은 텅 비었다. 중학교도 있고 개교한 지 100년이 넘었다는 초등학교도 있다. 새마을금고와 보건소, 파출소, 우체국, 행정복지센터 등도 있다. 크고 복작한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빙글빙글 방랑하다 골목을 빠져나와 마을 앞 강을 따라간다. 한 노인이 다리를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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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선대 절벽 위에 운서정이 자리한다. 일제강점기 김승희가 아버지 김양근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으며 우국지사들이 모여 망국의 한을 나누었다 전해진다. |
◆사선대
다리를 건너면 수목이 우거진 평평한 땅이고 강에서 빠져나온 물줄기가 가운데를 흐르고 있다. 그 물줄기 이편에 목재문화체험관과 청소년 수련원, 조각공원 등이 자리하고 저편에 테니스장과 잔디광장 등이 자리한다. 그리고 물줄기는 잔디광장 아래에서 다시 강에 합류해 광장 일대는 섬의 모양새다. 이곳은 1985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임실 관촌 사선대다. 조각공원 앞 커다란 벽이 그늘을 만드는 주차장에 선다. 고요하고, 넓다. 물소리도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주 넓어서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피면 저기 나무 아래에 연인이 앉아 있고 저기 물가에는 중년의 남자들이 쭈그려 앉아 있고 저기 산 아래 그늘에는 산책하는 노란 조끼의 여인이 있다. 그리고 커다란 벽에는 백발의 네 신선과 네 선녀가 있다. 한 분 신선은 열심히 이야기 중이신데, 세 분 신선의 시선은 선녀를 향하고 있는 듯하다. 똑바로 보지 않고 모로 보아서일까.
섬 모양 광장 일대 '국민관광지' 지정
커다란 벽엔 백발 네 신선과 네 선녀
까마귀떼 함께해 이름붙여진 오원강
이방원 사냥·신라 무열왕 전투 기록
신선 놀이터이자 인간 싸움터이기도
절벽 운서정·'경회루 축소판' 사선루
다국적 작가 조각공원 등 거니는 재미
강변에 '사선대 유래' 안내판이 큼직하다. 2천년 전, 진안 마이산의 두 분 신선과 임실 운수산의 두 분 신선이 이곳 강기슭에 모여 놀았다 한다. 병풍처럼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때론 대(臺)에 오르고 때론 바위 위를 거닐면서 맑은 물에 목욕하고 즐겼는데 까마귀 떼가 날아와 함께 어울렸다 한다. 그때 홀연히 네 명의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신선들을 호위해 어디론가 사라졌단다. 이후 해마다 그들 네 신선과 네 선녀가 이곳에 내려와 놀았다 하여 사선대(四仙臺)라 하고 까마귀가 함께했던 강이라 하여 오원강(烏院江)이라 불렀다. 조선 태종 이방원이 오원강에 사냥을 하러 왔었고 신라의 태종 무열왕은 오원강 유역의 성미산성에 웅거하고 있던 백제 부흥군과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옛 문헌에 나타나는 역의 이름도 오원역(烏原驛) 또는 오원(烏院)이다. 관촌 일대의 섬진강 상류를 지금도 오원강이라 한다. 관촌(館村)이라는 지명은 1935년에 생겼다. 관촌역에 이제는 여객열차가 정차하지 않지만 군사선이 분기하고 군사 목적의 화물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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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경회루를 축소해 만든 사선루. 멀리 지붕 위로 솟은 산이 태종 무열왕이 백제 부흥군과 싸웠다는 성미산이다. |
◆운서정과 사선루
조각공원을 등지고 강을 건넌다. 강변에는 철 잊은 코스모스 무리와 몇 송이 현란한 양귀비(관상용)가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신선의 놀이터이기도 했고 인간의 싸움터이기도 한 이곳이 오늘은 분명 신선의 시대에 가깝다. 꽃들 너머 강물은 멈춘 듯하다. 빛과 수목의 그림자 사이를 소요하던 조각들도 우뚝 멈춰 서서 짐짓 딴청이다. 그들 뒤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 펼쳐져 있다. 아주 낮지도 아니한데 높지 않다 느끼는 것은 그 산정에 올라선 커다란 정자지붕 때문일 게다.
정자는 구름이 깃드는 정자, 운서정(雲棲亭)이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 김승희라는 부호가 자신의 아버지 김양근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다. 쌀 300석을 들여 6년에 걸쳐 지었으며 우국지사들이 이곳에 모여 망국의 한을 나누었다 전해진다. 정자 주변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가침박달나무와 산개나리의 군락지라는데, 5월에 피어난다는 가침박달나무의 선녀 옷 같은 흰 꽃은 벌써 피고 진 듯하다.
그늘 예쁜 벚나무 길을 따라 간다. 나무아래 데크가 놓여 있고 그 너머는 아주 방대한 크기의 잔디광장이다. 멀리 사선루가 보인다. 경복궁 경회루를 축소해 만들었다는 누각이다. 멀리 지붕 위로 솟은 산이 성미산이다. 태종 무열왕이 전투했던 곳. 그러다 불현듯 깨닫는다. 이곳에 온 적이 있다. 10여 년 전, 그때 이곳은 축구장이었다. 공에 맞을까 사선루 앞에 커다란 그물을 쳐 놓았었지. 이제 이곳은 아무 때나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이고 한여름 밤에, 또 가을밤에,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매년 양력 10월5일을 전후해 '소충사선문화제'가 열린다. 임실의 큰 행사다. '소충'은 구한말 정재 이석용 장군과 그의 휘하 28의사를 배향하는 사우(祠宇)의 이름이다. 정재 장군은 1914년 37세를 일기로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원래 소충제와 사선제를 따로 개최하다가 1999년에 통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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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선대 조각공원. 메타세쿼이아 나무 사이에, 장미터널 곁에, 생태습지 가까이에, 잔디밭에, 강변과 산책로를 따라 어디에서나 조각품들을 볼 수 있다. |
◆사선대 조각공원
식당촌을 지나 강 가운데 조막만 한 섬에 자리한 카페를 지나, 운서정으로 오르는 산길을 조금 들여다보고는 사선대 벼랑 아래 데크 산책로를 걷는다. 무성한 나무에 뒤덮여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벼랑은 꽤 가파르고 어둑하다. 사선대 일대의 지층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진안 마이산 퇴적암과 같은 지질시대에 형성되었다. 마이산 지역은 역암이고 이곳은 진흙이 바위가 된 이암으로 긴 세월 동안 거친 홍수가 반복되면서 수직에 가까운 침식절벽이 만들어졌다. 이암은 비를 맞으면 검은색이 되는데 그래서 까마귀 '오(烏)' 자가 이곳 지명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데크 길 끝에 조각공원이 열린다. 잔디밭 위에 깨어진 바위들이 툭툭 놓여 있다. '나비'라는 작품이다. 벼린 모서리마다 빛이 파르르 튀어 올라 팔랑팔랑 정말 나비 같다. 선녀와 신선도 있고 아이언 맨도 있다. 한참 바라보게 되는 가족도 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 사이에, 장미터널 곁에, 생태습지 가까이에, 잔디밭에, 강변과 산책로를 따라 어디에서나 조각품들을 볼 수 있다. 사선대 조각공원은 1996년에 한국, 이탈리아, 영국, 미국, 프랑스, 그리스, 불가리아, 중국 등 다국적 작가들의 10개 작품으로 시작되었다. 임실군의 지원으로 신덕면 오궁리 신덕분교 미술촌에서 작업하던 작가들의 작품이다. 이후 2002년에 국내 작가의 작품 29개가 추가되었는데 현재는 조금 더 늘어난 것 같다. "아이고 좋다." 본의 아니게 산책로를 걷는 여인의 혼잣말을 듣는다.
사선대국민관광지에서는 어디든 돗자리를 깔거나 텐트를 칠 수 있다고 한다. 야영과 취사는 불가능하지만 슈퍼와 카페가 있고 수돗가와 놀이터, 화장실도 있고 무엇보다 걱정 없이 아이들이 뛰어다닐 잔디광장이 있어 피크닉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겨울 지나 봄이 오면 봄꽃만큼 많은 것이 나들이객이고, 여름이면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가을에는 단풍이 절경이고 겨울에는 썰매나 스케이트를 타기에 좋다. 신선과 선녀들이 흐뭇하게 웃겠다. 어쩌면 여름 물놀이 하는 아이들 사이에 그들이 슬쩍 끼어들지도 모른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광주방향으로 가다 남원분기점에서 27번 순천완주고속도로 완주방향 임실IC에서 내린다. 톨게이트 앞에서 직진, 임실교차로에서 오른쪽 전주방향 17번 국도를 타고 직진하다 사선문을 통과해 오원교 지나 오원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빠져나간다. 관촌교차로에서 1시 방향으로 강변을 따라 가다 주천교차로에서 오른쪽 사선교를 건너면 사선대국민관광단지가 넓게 자리한다. 사선교 앞 목재문화체험장 맞은편, 잔디광장 옆 식당촌 근처, 조각공원 입구에 무료주차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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