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충북 영동 송호관광지, 우거진 소나무 숲·그림같은 양산팔경…'국민관광지' 이름값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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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8-02  |  수정 2024-08-02 07:33  |  발행일 2024-08-02 제11면

[주말&여행] 충북 영동 송호관광지, 우거진 소나무 숲·그림같은 양산팔경…국민관광지 이름값
송호리 송림. 수령 100년 남짓한 소나무들의 숲이다. 만취당 박응종이 씨 뿌려 가꾼 솔밭에 기원하며 현재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있다.

산 많은 영동에서, 미동 없는 운동으로 넘치는 도로가 빛나는 마을과 들을 관통할 적에 강이 가까워짐을 느낀다. 촘촘한 그물에 감싸인 낮은 포도밭을 지나 담장도 지붕도 낮은 마을에 들자 커다란 청소년수련관과 '송호관광지' 관리사무소가 성큼 비켜선다. 관리사무소의 허벅지 뒤로 후다닥 숨은 불 꺼진 와인 체험관을 돌아나가자 커다란 숲이 펼쳐진다. 와… 대단한 소나무 숲이다. 웅장하고, 품위 있고, 아늑하다. 땅을 가득 채우는 그늘이고 하늘을 잊어버리는 넓은 감동이다.

조선 명종때 박응종이 심은 해송
일제강점기 훼손후 다시 심어
바위 위 우뚝 솟은 '여의정'
명승지 '양산팔경' 중 6경
강선대·용암엔 선녀·용 전설
6㎞ 코스 금강둘레길 곳곳 절경


[주말&여행] 충북 영동 송호관광지, 우거진 소나무 숲·그림같은 양산팔경…국민관광지 이름값
송림 가운데로 파고드는 길가에 '송호리 송림'이라 새겨진 커다란 표석이 있다. 파란 지붕을 얹은 분홍색 집은 '피서지 새마을 문고'다.

◆ 양산면 송호리 송림

송림 가운데로 파고드는 길가에 '송호리 송림'이라 새겨진 커다란 표석이 있다. '수령 300-400년생의 고송이 집단적으로 어우러져 있다'는 안내문을 읽는다. 누구는 1만 그루라 하고, 누구는 1천 그루 이상이라 한다. 휘 둘러보면 이쪽 끝은 가늠되나 저쪽 끝은 보이지 않는다. 파란 지붕을 얹은 분홍색 집은 '피서지 새마을 문고'다. 문학과 일반교양 등 다양한 도서 2천여 권이 비치되어 있고 피서 철에 한시적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커다란 시비에는 '양산가'가 새겨져 있다. "(전략) 슬프다, 네 장부여 /그대들은 끝내 씩씩한 사나이 /천추의 귀웅(鬼雄)이 되어서 /함께 제삿술을 마시는구나." '네 장부'는 신라의 장수인 김흠운, 예파, 적득, 보용나다. 그들은 신라와 백제가 싸울 때 모두 이곳에서 죽었고 당시 사람들은 '양산가'를 지어 그들을 애도했다. 김흠운은 요석공주의 남편이요 태종무열왕의 사위이자 신문왕의 장인이다.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 열전 편 김흠운 조에 생생히 기록돼 있으나 당대의 '양산가'는 전해지지 않는다. 시비의 노래는 조선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이 지은 것이다.

저 아래 기이한 장면이 있다. 섬 같은 바위 위에 정자와 팽나무와 이름 모를 관목 가지들과 사연 많아 보이는 석탑과 불상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도학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정자는 여의정(如意亭)이다. 조선 명종 때 황해도 연안부사를 지낸 만취당(晩翠堂) 박응종(朴應宗)의 후손들이 1935년에 지었다. 조금 먼 시간으로 거슬러 가면 고려 때 대제학을 지낸 밀양박씨 박시용이 있다. 그는 고려 후기에 본거지인 밀양을 떠나 처가인 영동에 세거하여 이 고장의 토성이 되었는데 그의 손자가 난계 박연, 국당 박흥생, 이요당 박흥거이고 박응종은 이요당의 후손이다. 박응종은 관직을 내려놓고 이곳에 낙향해 금강이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정자를 짓고 만취당이라 했다 한다. 그리고 여러 되의 해송 종자를 뿌려 송전을 가꿨다고 전한다. 안내문의 '수령 300-400년생의 고송'은 만취당이 가꾼 송전에 기원한다. 그러나 그가 씨 뿌려 키운 해송은 일제강점기 때 철도 침목으로 쓰기 위해 모두 베어졌다. 지금의 소나무는 그 이후에 심어 가꾼 것이다. 그러니 이 나무들은 대개 100년 남짓이겠으나 어쩌면 저 신령 같은 나무는 300년, 저 영혼 같은 나무는 400년쯤 되지 않았을까.

◆ 송호국민관광지

송호리 송림을 포함한 일대 28만㎡는 국민관광지이고 캠핑장이다. 화장실, 개수대, 샤워장, 족구장, 야외무대, 잔디광장 등이 조성되어 있고 전자레인지와 스마트 충전기, 공기주입기도 갖춰져 있다. 건장한 나무밑동들 사이에 가느다란 줄로 사이트가 표시되어 있다. 짙거나 살랑대는 그늘 아래고, 푹신한 땅 위다. 전체 A에서 F까지 6개의 캠핑 구역이 있고 저마다 이름을 가졌다. A는 안정감을 주는 중모리, B는 활기 가득한 휘모리, C는 송호관광지의 중심 굿거리, D는 솔내음에서 와인내음으로 자진모리, E는 느려도 좋아 진양조, F는 솔숲 안 와인내음 엇모리다. 이 이름들은 영동이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추앙받는 난계의 고향임을 의식적이고 천연덕스럽게 일러준다.

A에서 E구역은 화기를 사용할 수 없고 전기도 공급되지 않는다. 유일하게 F 구역만 전기와 화로대 사용이 가능하다. F구역은 '송호와인테마마을'이라는 일단의 영역에 속해 있다. 마을에는 쓰러진 술병 모양의 벤치가 있고,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터널이 있고, 밤이면 신들이 내려와 한바탕 파티를 벌일 것 같은 분수대가 있다. D구역의 한 사이트에 예약석 푯말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강과 가까운 A구역에서는 벌써 도착한 작고 간결한 텐트가 있다. 안에는 긴 머리의 여자가 잠들어 있고 밖에서는 젊은 남자가 오늘의 살림살이를 뒤적이며 살금살금 움직인다. 잠자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 행복한 수면을 지키려는 조심스러운 걸음도 행복한 나비 같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종소리가 울리는 듯하다. 해먹을 걸어놓고 종소리에 맞춰 흔들리는 가망을 생각한다.

[주말&여행] 충북 영동 송호관광지, 우거진 소나무 숲·그림같은 양산팔경…국민관광지 이름값
양산팔경의 제6경인 여의정. 조선 명종 때 황해도 연안부사를 지낸 박응종(朴應宗)의 후손들이 1935년에 지었다.
[주말&여행] 충북 영동 송호관광지, 우거진 소나무 숲·그림같은 양산팔경…국민관광지 이름값
강선대에서 본 금강과 용암과 송호관광지. 강선대는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곳으로 양산팔경 중 제 2경이다.

◆ 양산팔경 금강 둘레길

강변에는 소나무와는 다른 나무들이 저 멀리까지 길을 만든다. 이 나무들은 은행나무이고 느티나무이고 또 중국단풍이다. 느티나무 아래 1978년 영화 '소나기' 촬영지라는 기념석이 있다. 1955년 김기영 감독의 '양산도', 1972년 최하원 감독의 '무녀도' 등도 양산면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기념석 뒤로 보이는 바위는 용암(龍岩)이다. 목욕하는 선녀를 구경하다가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바위가 된 용이다. 선녀가 내려선 곳은 강 건너 1시 방향에 우뚝한 바위 절벽인 강선대(降仙臺)다. 강선대에 올라보면 바위가 된 용의 본심을 헤아릴 수 있다. 그는 하늘이 아닌 땅을 택했고 신화의 주인공으로 회자되기보다 현재하는 바위가 되기로 한 것이다.

영동 양산면을 끼고 흐르는 금강 일대 명승 여덟 곳을 '양산팔경'이라 부른다. 그중 1경이 몇 해 전 들렀던 영국사, 2경은 강선대, 3경은 금강 건너에 솟은 비봉산, 4경은 옛날 봉황이 깃들었다는 봉황대, 5경은 비봉산 낙조가 일품이라는 함벽정, 6경은 여의정, 7경은 송호관광지에서 3㎞정도 떨어져 있는 자풍서당(에서 글 읽는 소리), 8경은 용암이다. 여덟 개 명승 중에서 여섯 개가 모여 있는 금강 변을 따라 '양산팔경 금강둘레길'이 있다. 어디에서 출발하든 원점 회귀하는 6㎞ 길이다. 은행나무와 단풍나무의 길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던 저쪽으로 향한다. 강 너머로 언뜻언뜻 금강 둘레길이 보인다. 송호리 송림은 해금 모양의 물빛다리에서 끝난다. 다리는 금강 둘레길을 완주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워졌고 둘레길과 금강은 여전히 전진하고 있다. 모든 것이 감각되는 동시에 모든 것이 외부에 있다는 쓰라림을 느낀다. 아름다운 것들은 고약한 데가 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경부고속도로 대전 방향으로 가다 황간IC로 나간다. 황간삼거리 회전교차로에서 9시 방향으로 나가 마산삼거리에서 좌회전, 다시 영동마산교차로에서 우회전해 4번 국도에 올라 직진한다. 영동교차로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대전, 영동 방향으로 가다 학산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빠져나가 학산면소재지로 들어간다. 면소재지 내 학산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 양산면 가곡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하면 왼쪽에 청소년수련원과 송호관광지 입구가 보인다. 송호관광지 입장료와 주차료는 무료며, 캠핑장 이용 시 1박당 A-E구역 1만5천원, F구역 2만원이다. 피서지새마을문고는 8월18일까지 운영되며 휴무 없이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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