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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만진 소설가 |
1519년 9월20일 마젤란이 에스파냐 산루카 항을 떠나 대서양으로 들어섰다. 인류 최초의 지구 일주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젤란은 1521년 필리핀에서 죽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증언한 사람은 그 본인은 아니었다.
1522년 9월8일 에스파냐로 귀환한 일행 중에 엔리케가 있었다. 그는 마젤란의 노예였다. 마젤란은 산루카 항을 떠나기 전 유서를 남겼는데, 자신이 죽으면 엔리케를 일반인으로 풀어주라는 당부가 들어 있었다.
유서라면 윤봉길 의사가 떠오른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29일 상해 거사를 앞두고 김구 주석에게 제출한 이력서에 자신의 가족을 '유족'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어린 두 아들과 조국 청년들에게 각각 한 편씩의 유언시를 남겼다.
"너이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으라/ 그리고 너의들은 아비 업슴을 슬퍼하지 마라(두 아들에게 남긴 시 일부)"
"피끓는 청년 제군들은 아는가/ 무궁화 삼천리 우리 강산에/ 왜놈들이 왜 와서 왜 걸대나/ 피끓는 청년 제군들은 모르는가/ (중략) 군복 입고 총 메이고 칼 들어/ 군의 나발에 발맞추어 행진하세(청년들에게 남긴 시 일부)"
유서만이 아니라 노비 해방까지 생각하면 조현욱 지사를 떠올릴 일이다. 집안 노비들을 풀어준 조현욱 지사는 1919년 독립만세운동으로 투옥되었다. 그때 옥중시를 썼다.
"오백 년 동안 대의를 숭상했는데(五百由來尙義人)/ 하루아침에 오랑캐의 종이 될 수는 없다(一朝胡爲犬羊民)/ 하늘의 해가 빛을 잃고 땅도 그리 되었으니(天日無光如此地)/ 바다로 들어가 안식할지언정 왜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寧爲蹈海不爲臣)"
2년 동안 감옥에 갇혀 고문을 겪은 지사는 옥중시에 "나의 시신은 가마소 깊은 물속에서 찾으라(今將副矣覓屍於釜淵)"라는 마지막 구절을 덧붙인 후 청송 부연에 투신 자결했다.
조현욱 지사 순국 기념비가 청송 현서중학 앞과 대구 노곡동 야산에 세워졌다. 하지만 노곡동 산78-1의 기념비는 인근에 이정표도 없어 찾을 길이 묘연하다.
장편소설 '팡리마 아왕'도 창작된 엔리케에 견주면 현창이 너무나 소홀하다. 하늘의 해가 광명을 회복한 지 80년이 다 되었는데, 땅은 아직도 빛을 되찾지 못했단 말인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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