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시선] '개소리' 판 치는 정치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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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0-28  |  수정 2024-10-28 07:10  |  발행일 2024-10-28 제22면
"정서적 내전" 이재명 진단

맞지만, 남 이야기 하듯 해

개소리 난무한 국정감사장

"개소리 교활한 사회 해악"

개소리에 현혹되지 않아야

 

[조진범의 시선] 개소리 판 치는 정치
편집국 부국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말했다. "우리 사회가 정서적으로 거의 내전 상태로 가는 것 같다. 싸우는 정도가 아니고 서로 제거하고 싶어 한다." 최근 노무현재단 유튜브에 출연해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한 말이다. 정확한 진단인데, 이 대표의 입에서 나오니 좀 우습다. 한쪽 진영에서 '정서적 내전'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양극화 사회를 걱정하는 꼴 아닌가.

 

 다음 말에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됐다. "예를 들면 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나타난다" 정서적 내전의 피해가 자신이라는 의미다. 전형적인 '피해자 코스프레'다. 범죄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는 이 대표가 자기 방어를 위해 교묘하게 양극화 논리를 끌어온 셈이다. 이 대표는 또 말했다. "상대를 제거하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정치가 뒷골목 건달의 양아치 패싸움처럼 됐다" 유체이탈 화법처럼 느껴진다. 정치적 혼돈의 당사자가 남 이야기 하듯이 한다.


정서적 내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국정감사다. 야당 의원들은 피감기관인 윤석열 정부를 말살하려고 작정한 듯하다. 고함을 치고, 윽박지르는 게 다반사다. 추태와 정쟁으로 점철돼 있다.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를 악마화하는데 '총력을 다한다'는 인상을 준다. 민주당 양문석 의원은 "청와대를 기생집으로 만들어 놓았나. 이 지x들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국감에서 김 여사와 국악인 원로 등의 청와대 간담회 도중 이뤄진 가야금 독주, 판소리 제창을 트집 잡으면서 했던 말이다. 민주당 이광희 의원은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깐족댄다"라고 비아냥댔다. 법제사법위에선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박상용 검사의 검찰청사 분변 의혹과 관련, "쌍디귿" "똥시난베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상대를 제거하기 위해 창피함도 모르는 말들을 내뱉고 있다. 오히려 의기양양하다.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다.


미국의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에 따르면 지금 정치권에서 횡횡하는 말은 '개소리'에 가깝다. 프랭크퍼트는 2005년 스탠퍼드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를 펴냈다. 프랭크퍼트 교수는 "'개소리쟁이'는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의도만 중요하다. 의도에만 부합하면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개소리를 통해 여론을 유도하고 태도와 감정을 조작한다"고 지적했다. 또 "개소리는 진실에 대한 존중을 훼손하고 관심을 약화시킴으로써 교활하게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고 했다.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 대한민국 정치를 들여다보고 분석한 것 같아 놀랍다.


최근 (사)대구경북언론회 주최로 '한국 사회의 정서적 양극화 위기와 대구경북 정치언론의 과제'라는 주제의 지역발전 포럼이 열렸다. 혐오와 분열이 일상화된 사회(특히 온라인)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점검하는 자리였다. 당장의 해결책은 없다. 아무리 옳은 방향을 제시한들, 진영 논리에 갇힌 정치 분위기를 바꿀 수 없다. 한국 정치는 '생존 게임' 비슷하다. 자기 목숨을 걸고 상대를 제거하려고 한다. 생존 게임에는 관용, 포용, 다양성이라는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개소리'가 판을 치는 배경이다. '내로남불'로도 연결된다. 우리 편에서 하는 말은 다 맞고, 다른 진영에서 나오는 주장은 '개소리' 취급하기 일쑤다. 진영 논리를 극복해야 한다는 말이 쏟아진다. 맞는 말인데, 어쩌면 '개소리'만 알아차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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