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산지는 예쁜 카페와 식당들, 그리고 이국적인 모습의 주거단지와 의젓한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어 '가창의 알프스'라 불린다. |
태양이 정수리에서 살짝 미끄러진 시간, 우록리(友鹿里) 녹동서원(鹿洞書院) 앞 풀밭에서 사슴이 웃는다. 눈꺼풀에 쌓이는 햇살 때문에 헛것을 보았나. 머리에 꽃을 단 녀석도, 짐짓 고개를 빗겨 속눈썹을 자랑하는 녀석도, 내게는 관심이 없는 어린 녀석도 분명 웃는다. 가을 햇살은 세상을 환영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으니 풀기 어려운 지성의 문제는 감각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다. 하여 고양이가 안녕안녕 손짓을 하여도 이상하지 않다. 톡, 은행이 떨어진다. 툭, 감이 떨어진다. 손끝이 갈라지는 가을이다.
한천서원 외삼문 앞에 수령이 500년이라고도 하고 800년이라고도 하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행정1리 마을의 수호신으로 높이가 30m, 둘레는 6.8m나 된다. |
우록리 녹동서원 앞 풀밭에서 사슴이 웃는다. 임란 때 이 마을에 정착한 김충선 장군이 '사슴과 벗하는 마을'이란 뜻으로 우록동이라 했다고 한다. |
◆ 우록리의 은행나무
삼산리 녹문(鹿門)을 빠져나가는 신천을 거슬러 우록으로 간다. 천변 느티나무의 붉은 터널이 주는 기쁨과 우록리 먹거리촌 은행나무들의 이해할 길 없는 찬란 때문에 고달프다. 작은 삼산지의 사면을 지나 햇살 가득한 우록리 넓은 골짜기에 다다르면 소외에 도달한 폐인처럼 편안해진다.
우록리는 원래 '우미산 아래 소 굴레 모양의 마을'이란 뜻으로 '우륵동'이라 불렸다. 그러다 임란 때 이 마을에 정착한 김충선 장군이 '사슴과 벗하는 마을'이란 뜻으로 우록동이라 고쳤다고 한다. 모하당 김충선 장군, 그의 본명은 사야가(沙也可)다. 1592년 4월13일 가토 기요마사 휘하의 우선봉장으로 부산에 상륙한 그는 4월20일, 경상도병마절도사 박진에게 귀순해 조선의 장수가 되었다. 이후 정유재란, 병자호란에서도 큰 공을 세운 그는 이름을 얻게 된다. '바다를 건너온 모래를 걸러 금을 얻었다'는 뜻을 살려 성은 김, 본관은 김해, 이름은 충선이라 했다. 녹동서원은 김충선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그는 1642년 72세의 나이로 우록동에서 세상을 떠났고, 사당의 뒤쪽 삼정산 숲속에 묻혔다. 서원 옆에는 달성 한일우호관이 자리하고 복주머니에 들어앉은 '마네키네코'가 한일양국의 행운을 기원하며 안녕안녕 손짓을 한다.
이들 앞에 막대사탕마냥 동그란 은행나무들의 길이 있다. 그리 길지도 않고 아주 찬란하지도 않지만, 우록의 가을 은행나무는 옛사람의 이야기와 사슴과 고양이와 함께 환영의 디테일을 만든다. 이파리는 이미 노랗고 또 아직 파랗다. 구슬 같은 은행이 길바닥에 가득하다. 더러는 짓눌려 있지만 특유의 냄새는 나지 않는다. 은행나무 길 옆 작은 밭은 은행잎에 덮인 채 훅훅 숨을 쉬고 밭 너머 흙돌담 위의 거대한 은행나무는 푸른 불꽃처럼 솟구쳐 있다. 그 옆에 녹동서원으로부터 살짝 돌아선 자세의 삼문이 있다. 김충선을 시조로 하는 김해김씨 9대손 판관 김용하(金龍河)의 재실인 청검재(淸儉齋)다. 재실 안쪽 삼정산 자락의 은행나무가 한껏 노랗다. 서원 위쪽의 우록1리는 김충선의 후손들이 사는 집성촌이다. 마을 경로당 맞은편에 몇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그중 한 그루가 보호수인 '김충선 나무'다. 수령 200년쯤 되었다는 나무는 김충선이 살았던 집터로 추정되는 곳에 후손들이 심은 것이라 한다. 우미산 북쪽자락 백록에서 흘러온 물줄기와 우미산 남서쪽 밤티재 부근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이 은행나무 앞에서 만난다. 신천의 최상류다.
◆ 삼산리 삼산지와 우록분교
녹동서원 앞에 막대사탕마냥 동그란 은행나무들의 길이 있다. 비슬산둘레길 8코스인 '은행나무 길'이 이곳에서 시작된다. |
삼산리의 자연마을인 녹문은 우록리의 입구라는 뜻이다. 좁은 녹문길이 덜 좁은 우록길로 이어지는 마을 한가운데에 삼산지가 자리한다. 예쁜 카페와 식당들, 그리고 이국적인 모습의 주거단지와 의젓한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어 '가창의 알프스'라 불린단다. 마른 연잎 줄기들이 일제히 푸른 수면으로 고개를 떨궜다. 벌써 붉은 잎들을 털어낸 나신의 나무들과 작게 무리지은 은빛 갈대가 주변을 서성인다. 파드득파드득 소란스러운 것은 전망 데크에 서있는 바람개비들이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저수지의 가을 물빛은 지나치게 푸르다.
삼산리를 빠져나가기 전 가창초등학교 우록분교에 들러본다. 녹슨 철문이 반짝거리는 체인 자물쇠로 잠겨 있다. 문 너머 보이는 작은 건물 앞에 곧게 자라난 플라타너스가 예쁘게도 흔들린다. 학교는 1949년에 개교해 1994년 폐교되었다. 이후 2007년부터 창작 스튜디오로 쓰였지만 현재 건물의 쓰임은 모르겠다. 철책이 둘러진 운동장은 2020년경부터 '학교나무은행'으로 쓰이고 있는데 현재 154그루를 보유 중이라 한다. 여러 학교를 지키던 나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뽑혀나가야 할 때 이곳으로 온다. 그리고 수목이 필요한 학교나 교육기관으로 분양된다. 저마다 옛 학교 이야기로 소란스러울 텐데 그들 가운데로 끼어들 수가 없다. 학교 가는 길의 좁은 골목에 감 떨어지는 소리만 천둥 같다.
◆ 행정리 은행나무와 한천서원
가창 체육공원의 메타세쿼이아 길. 이 길에 들어서면 가창로에서 신호를 받아 서 있는 트럭 운전자의 부러운 눈빛도 볼 수 있다. |
우록으로 가는 동안에는 생각지 못하지만, 우록을 떠나는 가창로에서는 내내 신천을 느낀다. 도로를 달리다 가을빛으로 물든 메타세쿼이아 길을 보았다면 그곳은 대일리 신천변의 체육공원이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한나절이고 반나절이고 꼼짝 않을 수 있을 것 같고, 메타세쿼이아 길에 들어서면 가창로에서 신호를 받아 서 있는 트럭 운전자의 부러운 눈빛도 볼 수 있다. 또 가을날 도로를 달리다 한천서원(寒泉書院) 이정표를 발견했다면 기꺼이 새어 나가볼 일이다. 한천은 신천 상류의 차고 맑은 물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냉천(冷泉)이라고도 한다. 무량사라는 절집의 어마어마한 소나무 정원을 스쳐 신천을 건너면 한천서원을 찾을 수 있다. 그 외삼문 앞에 수령이 500년이라고도 하고 800년이라고도 하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가창면 행정1리 마을의 수호신으로 이 은행나무로 인해 동네 이름이 행정리(杏亭里)가 되었다 한다.
한천서원은 고려 개국 공신인 충렬공(忠烈公) 전이갑(全以甲)과 충장공(忠康公) 전의갑(全義甲) 형제를 모시고 있다. 이들은 918년 왕건과 함께 고려를 건국한 인물로, 927년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침략했을 때 왕건과 함께 출전하여 팔공산 동수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잠겨있다는 서원의 외삼문이 삐걱 열리더니 한 여인이 몸을 모로 세우고 나온다. 한 뼘 틈으로 왁자한 소리와 함께 서원 마당 가득한 아이들이 보인다. 아이들의 현장학습 장소 등으로 쓰이는 모양이다. 문이 꾹 닫히자 적막강산이다. 은행나무 아래 막걸리 한통이 놓여 있다. 누구의 정성인가. 은행나무는 오랫동안 달성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언젠가 해제된 듯하다. 가을에 낙엽이 멀리 날아가 흩어지면 이듬해의 농사가 흉작이 되고, 나무 밑에 모여 있으면 대풍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늘 낙엽은 나무 아래 모여 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청도, 팔조령 방향 30번 국도를 타고 가면 된다. 스파밸리 지나 김삿갓 막국수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한천서원, 대일1리 회관에서 좌회전하면 가창체육공원이다. 팔조령 터널에 닿기 전 달성한일우호관 안내판과 우록리 먹거리촌 표지석에서 우회전해 들어가면 삼산리 지나 우록리다. 상동 상동교에서 파동 용계교까지 이어지는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가창으로 진입해 우록리, 삼산리, 대일리, 행정리 순의 가을 드라이브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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