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25일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무등1리에 위치한 버스정류소에서 주민 박양자(77)씨가 기약 없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지난 25일 오후 1시쯤 찾은 대구 달성군 하빈면의 작은 농촌 마을 무등1리. 평균 연령 75세 어르신 86명이 거주한다. 대구 외곽인 달성군에서도 대표적인 교통 소외지역이다. 마을에서 버스정류장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10분 이상 소요된다. 하나 뿐인 버스 노선(성서2번)의 배차 간격도 1시간 가까이나 된다. 이 마을 어르신들에게 자가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품이다. 마을 이장 백중현(68)씨는 "옛날에 지게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것처럼, 여기서 자가용이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힘들다"며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대안이 없다. 자가용은 불편 유무를 떠나 생존의 문제"라고 했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운전면허 반납 제도에 대한 어르신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대중교통 등 이동권 보장을 위한 마땅한 대안이 없을 뿐더러, 운전면허 반납에 따른 지자체 혜택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분위기다.
26일 대구시에 확인 결과, 지난해 대구지역 65세 이상 운전자 24만7천371명 중 운전면허를 반납한 인원은 6천804명이다. 반납률은 2.75%다. 시는 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2019년부터 운전면허 자진 반납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들은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시 10만 원을 충전한 대구로페이 선불카드 1매를 받는다.
하지만, 일회성 현금 지원 방식에 대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교통 여건이 비교적 열악한 농어촌 지역에선 이 정도 인센티브로 운전대를 놓게 만들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무등1리 주민 박양자(77·여)씨는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10만 원을 준다고 하던데, 여기서 그 돈 받고 반납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작년부터 시내버스도 무료로 바뀌었지만, 바쁜데 1시간씩 버스를 기다릴 순 없다"고 했다. 참외 농사를 짓는 김태환(81)씨도 "매일 4㎞가량 떨어진 하빈면 시내에 참외를 배송하러 간다. 비료·농산물 등 각종 물품을 실어나르려면 개인 차량이 꼭 필요하다"며 "차량이 없으면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도시에 있는 자식을 부를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생계형 고령 운전자를 대체할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도 문제다. 버스·택시·화물 업종에 종사하는 65세 이상 생계형 운전자는 매년 늘고 있다. 2019년 512명이었던 고령 버스 운전자는 지난해 1천52명으로 5년새 두 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택시와 화물 고령 운전자도 각각 31%(5천575명→7천299명), 80%(1천833명→3천306명) 증가했다. 이들 업종은 업무 강도에 비해 보수가 적어 젊은 신규 직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현행 면허반납 시스템만으론 고령 운전자 대응이 어렵다고 보고, 장기적이고 실효성 있는 새 시스템과 병행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과)는 "우리나라는 고령 취업자 비율이 OECD 선진국의 3배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고령자 이동권을 제한하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며 "한국형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자진 조건부 면허 등 여러 부분을 융합해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종합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사진=이승엽기자 sylee@yeongnam.com

이승엽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