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시연 박시연트리오 리더
2024년 6월4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우리는 쉴 새 없이 연주하고 녹음했다.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대구팀과 함께 비행기 예약부터 공연 일정 조율, 악기 준비까지 모든 걸 우리 손으로 해낸 첫 월드투어의 시작이었다. 악기 지원이 어려운 공연장을 대비해 숄더 키보드, 베이스기타, 접이식 드럼세트를 챙기고, 커다란 캐리어 하나에 악기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을 때, 낯설 것만 같던 유럽의 공기는 의외로 익숙했다. 암마인에서 하루를 보내며 곡을 쓰고 녹음하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숨을 골랐다.
첫 무대는 독일 만하임의 'Alte Feuerwache'. 1912년 세워진 옛 소방서를 개조한 이곳은 현재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전시가 열리는 문화예술의 중심지다. 작고 아늑한 무대, 뚜껑이 열린 정감있는 업라이트 피아노, 그리고 자연스레 음악을 받아들이는 관객들. 우리는 이 무대에서 박시연트리오 1집 수록곡 '시김'과 '희망'을 연주했다.
'시김'은 한국 전통음악의 정서를 재즈로 풀어낸 곡으로, 낯선 공간에서도 익숙한 울림처럼 조용히 퍼졌다. 이어서 흐른 '희망'은 곡 제목처럼 힘 있고 따뜻하게, 마치 독일의 밤공기 속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짧은 독일어 인사와 함께 시작된 이 무대는, 우리에게 음악이 국경을 넘는 언어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해주었다. 이 무대에 함께 선 김주권 선생님은 과거 독일에서 유학하며 품었던 그 시절의 향수를 담아, 우리의 반주 위에 독일 가곡을 얹어 불렀다. 그 순간 무대 위에는 두 나라의 정서가 나란히 놓였다. 멀게 느껴지던 두 문화가 음악이라는 한 줄기로 이어지는 풍경은, 연주자로서도 깊은 감동이었다.
그날 연주는 고즈넉한 저녁, 작은 바에서 이뤄졌다. 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온 아이들, 자전거를 타고 찾아온 키 큰 독일어른, 경복궁을 다녀온 기억을 떠올리며 “와줘서 고맙다"고 말해주셨던 따뜻한 인사까지, 그 모든 순간이 아직도 마음 깊이 남아 있다. 연주를 마치고 우리는 트램 선로를 따라 조용히 걸었다. 이 넓고 낯선 땅 위에 우리의 음악이 닿았다는 사실이 벅찼지만, 동시에 그 무한한 가능성은 자그마한 두려움으로도 다가왔다. 그러나 그 두려움 속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확신을 얻었다.
음악은 길을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 위를 계속 걸어갈 것이다.
박시연 <박시연트리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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