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지진 민사소송 1심-2심 선고 비교
2017년과 2018년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정부와 민간사업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법원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구고법 민사1부(재판장 정용달)는 13일 포항시민 111명이 국가와 넥스지오 등을 상대로 제기한 '포항지진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전원의 청구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취소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지열발전사업으로 인해 지진이 촉발됐다는 점은 1심과 마찬가지로 인정된다"고 전제하면서도 “국가배상법상 손해배상이 성립하려면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이 입증돼야 하나, 원고들이 제시한 자료만으로는 그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2023년 11월 국가의 지열발전 사업이 지진 원인이 됐다는 점을 인정하고, 피해를 본 시민에게 1인당 200만~30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 후 포항지진 손해배상 청구에 참여한 인원은 49만9881명으로 늘었고, 배상 규모는 총 1조5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항소심은 이 같은 국가 책임을 전면 부정했다. 재판부는 “지열발전이 물 주입을 통해 지진을 유발했더라도, 이를 추진한 과정에서 관련 기관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명백한 부작위를 했다는 점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행정기관이 위험을 예견하고도 이를 회피하지 않았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 직후 법정 안팎에서는 시민들의 강한 반발이 이어졌다. 일부 시민은 재판장을 향해 “50만 포항시민의 고통을 외면한 판결"이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모성은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 공동대표는 “지열발전이 정부 주도로 추진된 사업이라는 점은 정부 스스로도 인정했는데,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시민단체들은 즉각 상고하겠다는 입장이다. 포항11·15촉발지진범시민대책위는 성명을 통해 “국가의 책임을 회피한 이번 판결은 사법 정의를 스스로 저버렸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로 국가배상 책임이 불인정됨에 따라 전체 소송인단 약 50만명의 법적 보상 가능성은 대법원 최종 판단에 달리게 됐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촉발지진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은 시민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점에서 깊은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포항시민의 정신적 보상과 법적 권리 회복을 위해 입법적 절차 등 모든 노력을 함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강덕 포항시장도 공식 입장을 통해 “지진 피해로 극심한 고통을 겪은 시민들의 현실을 외면한 결정"이라며 “감사원과 국무총리실 조사 결과에서 정부의 대응 미비와 과실이 드러났음에도 이를 무시한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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