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원 독립영화감독
“늦여름, 어느 때와 다름없이 도시는 붐비고, 모든 움직이는 것들의 속도는 빠르다. 그러나 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는 세연은 매일같이 천천히 차를 내려 마시고, 빨래를 널고, 출근을 하고, 혼자 밥을 먹는다. 그는 꿈이 있지만 그 곁에 맴돌 뿐이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해가 지고 어두워진 강을 찾아 사진을 찍는 것이 꿈을 실행하는 유일한, 살아있다 느끼는 순간이다. 그런 밤의 강에는 세연 말고도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 재우 또한 꿈을 꾼다. 모래를 팔아 큰 돈을 버는 꿈. 그는 밤에 몰래 숨어든 강변의 모래를 퍼다가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명 '모래 데이터'를 수집중이다. 유난히 뜨겁고 길었던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고 혼자였던 그들은 밤의 강을 공유하고, 마주보며 밥을 먹고, 함께 길을 걷는다.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가서는 용역 미팅 자리를 받아내기 위해 매달리고 울부짖는 재우가 있고 은근한 무시의 눈빛과 그것을 침묵하는 동료들과 함께인 일터, 그리고 죽음을 배웅하는 아버지의 일을 돕는 세연이 있다. 겨울이 올 무렵, 세연과 재우는 서로의 약점을 마주한다. 시린 계절만큼이나 쪼그라든 마음으로 겨우내 가까워진 둘의 거리는 처음보다도 한발 더 멀어진다. 그러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자신들의 삶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한 겨울, 그들은 파헤쳐진 모래톱이 쌓인 강을 디디고 선 채로 다시 만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마음,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의 모양으로 세연과 재우는 다시, 봄을 맞이한다."
올해 촬영 예정인 필자의 두 번째 장편영화 '별과 모래'의 줄거리다. 구성은 기본적으로 3막 구조를 따르나, 일상에서 벌어지는 아주 사소한 사건과 사고들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최대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늘 마주하는 생경한 국면과도 같은 추상적 상황을 영화적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적극적으로 실제 상황을 기록하여 빠른 속도로 공유하는 호흡의 작업이나, 좀 더 시간을 두고 이야기의 구성에 힘을 쏟아야 할 작업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그 사이에 포커스를 두고, 위와 같은 삶의 그러한 특징을 뚜렷하게 조명하고자 한다. 모두가 점과 같은 별과 모래처럼, 아주 작고도 유한한 생명의 일부라는 걸 영화만이 가진 추상성과 시퀀스의 흐름에 따라 오직 영화 속에서만 이야기 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2025년 사계절이 지나기 전, 작업을 통하여 강과 사람을 기억하고 다시 올 봄을 마주할 준비를 하겠다, 다짐한다.
감정원<독립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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