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시연 박시연트리오 리더
독일 만하임에서의 공연을 마친 뒤, 우리는 폴란드 카토비체로 향하는 장거리 여정에 올랐다. Flix Bus를 타고 약 14시간을 달리며 중간에 버스 기사가 교체되고, 국경에서는 경찰의 여권 검사를 받는 등 긴장의 순간도 있었다. 그 여정 속에서 각 도시의 맥도날드에서 맛본 빅맥 세트를 비교하며 피로를 달래는 소소한 재미도 누렸다.
카토비체의 공연장은 숲 한가운데에 자리해 마치 비밀의 장소처럼 느껴졌다. 좁고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들어가니, 짙은 숲 냄새와 함께 저 멀리 기찻길이 보이는 풍경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일부러 이곳까지 음악을 들으러 온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이곳은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열리는 열린 공간으로, 피자와 맥주를 곁들이며 누구나 자유롭게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이날은 이유밴드와 함께 무대에 올랐고, 공연장을 찾은 한국인 관객들과의 만남은 반가움을 더했다. 풀냄새, 바람, 그리고 그 찰나의 감정을 즉흥적인 선율에 담아 전하고자 했다.
카토비체 공연 후에는 다시 새벽 기차를 타고 비드고슈치로 이동했다. 다섯 시간의 기차 여정과 역까지 짐을 들고 이동한 시간 속에서 광활한 폴란드의 대지를 바라보며 깊은 위로를 받았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의 풍경은 여행의 피로와 외로움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지난해 6월16일, 비드고슈치에서의 공연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 속에서 펼쳐졌다. 2023년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새롭게 가입한 이 도시는 다양한 건축 양식과 넓은 녹지가 어우러져 있어 '작은 베를린'이라 불리기도 한다. 공연은 오스트로메츠코 궁전(Pałac Nowy w Ostromecku)에서 열렸고, 궁전 단지 내에는 1900년대 초 폴란드 최대의 피아노 제조업체였던 브루노 조머펠트의 피아노 전시도 함께 진행 중이었다. 음악 도시로서의 자부심이 공간 전반에 깃들어 있었다.
비드고슈치에서 만난 관객들은 오랜 시간 잊지 못할 것이다. 처음 접하는 음악임에도 모두가 숨을 죽이고 깊이 몰입해주었고, 1집 수록곡 '사려니 숲길'을 연주하던 순간엔 창밖 너머 펼쳐진 초록 들판이 무대와 하나가 되는 듯한 감동을 주었다. 연주 후, 정장을 차려입고 찾아온 노부부와 나눈 감사 인사는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장면이 되었다.
만국 공통어인 음악. 그 음악만으로 세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은, 이국 땅에서 더욱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전원의 녹음이 묻어 있는 듯한 폴란드 두 도시에서의 연주는 긴 여정 속의 작지만 깊은 쉼이자, 우리 음악의 폭을 한층 더 넓히는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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