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병인 대구간송미술관 대외협력팀 책임
미술관 혹은 박물관에서 작품을 마주하다 보면, "이 작품은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보존되어 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던 적 있지 않으신가요?
문화유산이 본연의 의미와 가치를 되찾아 우리 눈앞에 서기까지,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진행되어온 섬세하고 전문적인 문화유산 수리복원의 과정이 있습니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들이는 정성과 노력을 마주할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한 감동과 함께 수리복원 전문학예사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들기도 합니다.
최근 문화유산 수리·복원이 역사적 맥락이나 문화적 의미를 되살리는 것을 넘어, 사람의 마음까지도 어루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날, 미술관의 '보이는 수리복원실'을 앞을 조용히 찾아오신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리창 너머 작업 중인 어느 기록물에 대한 수리복원 장면을 한동안 바라보던 그들은 끝내 눈시울을 붉히며 작업에 참여한 수리복원 학예사들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알고 보니 지역 출신 아동문학가 윤복진의 유족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요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우리말과 얼을 전하려 했던 그는 6·25 전쟁기 월북한 사실로 인해 오랫동안 조명받지 못했고, 그의 딸은 그런 아버지의 삶이 언젠가 새롭게 조명되길 기다리며 한평생 외롭게 아버지의 흔적을 지켜왔다고 합니다.
월북한 가족을 둔 이들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조심스러웠을지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날 유족의 눈물 속에는 오랜 세월 억눌러왔던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씻어내고, 수리복원을 통해 아버지의 삶과 노력이 새롭게 기억되는 것에 대한 깊은 위로가 함께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까지 어루만질 수 있는 수리복원의 가치를 '시민참여 수리복원 공모사업'을 통해 대구시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자녀의 그림일기나 연애편지처럼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의 조각들이 있습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그 안에 담긴 우리들의 이야기와 추억을 수리·복원 과정을 통해 되살리고, 그 의미를 다시 이어가고자 합니다.
때로는 서랍 속에서 지켜온 개인의 기억이 우리 도시의 자랑이 되고, 한 장의 기록이 우리 모두의 유산이 되기도 합니다. 이번 '대구시민 수리복원 공모사업'이 바로 그러한 가능성의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구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윤병인 <대구간송미술관 대외협력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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