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24프레임, 다시 올 봄을 기다리며 ( )를 띄운다

  • 감정원 독립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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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27 06:00  |  발행일 2025-05-26
감정원 독립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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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01. 팔현습지가 훤히 보이는 강 건너편 둑방길. 가을이 내려앉은 빛으로 반짝이는 금호강의 윤슬과 낙엽들. 어디에선가 날아온, 나무사이로 두둥실 떠오르는 하얀색 풍선. F02. 강촌햇살교를 오고가는 사람들, 자전거, 강아지.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면 물사리들이 물살 따라 흐르다 멈추다를 반복한다. 철새들이 물 위에 떠있고, 어린 오리들은 수면 위를 짧게 가로지른다. 마을과 습지를 잇는 강촌햇살교를 천천히 가로지르는 풍선. F03. 다리를 건너 마을 반대편, 팔현습지에 내려앉은 풍선은 강촌마을 아파트와 수성파크골프장을 등지고 잠시 머문다. 골프공이 채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강바람이 천천히 불어든다. F04. 바람 따라 하식애로 이동하는 풍선. 낮잠에 든 수리부엉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더 이상 하식애 쪽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하식애의 표면은 앙상하다. F05. 하식애와 강 사이를 따라 팔현습지 안쪽으로 서서히 이동한다. 왕버들숲 한 구석에 머물며 나뭇가지에 걸리지 않으려 천천히 가라앉는다. F06. 동그랗고 하얀 풍선은, F07. 스스로의 무게를 지탱하며 F08. 아주 천천히 가라앉는다. F09. 왕버들숲 사이, 자리 잡은 풍선. 동그란 왕버들나무 잎사귀는 소리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고요하다. 풍선 주변으로 노란색 금지선이 둘러져 있다. F10. 특수 보호의를 착용한 행동원은 금지선으로 서서히 다가간다. 발에 밟힌 낙엽이 부스러지는 소리. F11. 금지선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행동원. '무엇일까? 안전할까? 신뢰할 수 있는가?' F12. 금지선 안으로 들어간 행동원은 풍선에 가까이 다가간다. 마주한다. 바라본다. F13. 미동 없는 풍선. 행동원은 천천히 팔을 올려 풍선에게 장갑 낀 손을 가져다댄다. F14. 서서히 가까워지는 풍선과 손.


F15. 손이 닿이는 순간, 무언가 묵직함이 느껴진다. '풍선 안에 무언가가 있다!' 풍선을 밀어내려는 순간, F16. 펑! 하고 터지는 풍선. F17. 바닥에 쏟아진 각종 찌라시들. F18. 찢어진 풍선 조각들 사이로, '팔현습지',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 '월간팔현', '수리부엉이의 눈' 등의 단어과 그림, 사진들이 흩어져 있다. F19. 행동원은 조심스레 주황색 찌라시 하나를 들어올린다. F20. 찌라시에는 또렷히 '팔현습지'라 적혀 있다. F21. 행동원은 카메라를 응시한다. '우리의 행동이 Balloon Propaganda 입니까?' F22. 풍선이 날아온 자리에 붉은색 깃발이 꽂혀 있다. 깃발은 다시 불어오는 강바람에 흔들린다. F23. 마치 풍선의 시선처럼 깃발에서부터 서서히 멀어지는 카메라. 이 땅을 지키고자 흩뿌려진 찌라시들은, 찢겨진 풍선과 낙엽들 그리고 붉은색 깃발 사이에 뒤엉켜 있다. F24. 해질 무렵 고요한 팔현습지 전경. 우리는 다시 올 봄을 기다리며, ( )를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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