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노송의 주례 말씀/김욱진 지음/시인동네/132쪽
"여기, 지금, 나는/ 바닥 아닌 바닥에서/ 보이지 않는 발/ 바닥을 보았고/ 바닥 없는 바닥/ 아슬아슬 가닿은 발/ 바닥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소리 들었다/ 비 오듯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 사이로… 어느 바닥인지 알 수 없는 그 바닥/ 간신히 가닿고 보니/ 바닥이라는 바닥 기운 다 끌어당기고 가는 저 발/ 바닥은 바다보다 깊고 넓적하다" ('발이 하는 말' 중에서)
김욱진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어느 노송의 주례 말씀'을 펴냈다. 시집 첫머리에서 "시도 때도 없이 왔다 가는 생각 분리수거하기 쉽잖고 내버려뒀다 되살아나는 거 시답잖게 받아 적었더니 이게 다 시가 될 줄이야"라는 것처럼, 시인은 일상에서 한 사유들을 붙잡아 시로 엮어냈다.
"왼발 오른발 짝짝/ 여기, 지금뿐이라는 각오로/ 한 걸음 한 걸음/ 원을 그리며 내딛는 발자국, 절박하다/ 저토록 간절한 원이 어디 있을까" ('한 바퀴' 중에서)
김욱진의 시는 리듬과 이미지 속에 깊은 성찰 의지가 담겨 있다. 새로운 사유와 감각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재발견하고, 인간이 쌓아온 중심 가치인 사랑의 시학을 되살리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사소하지 않은 일상들을 불교적 사유에 천착해 받아 적은 시 53편이 쉬우면서도 깊이 있게 다가온다.
해설에서 유성호 한양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다양하고 선명한 감각을 통해 시인은 자신의 원체험을 발견하고 그것을 시 안에 풀어놓고 있다"며 "김욱진의 언어는 경쾌하고 아름다운 리듬을 가진 채 알맞은 화음(和音)으로 출렁이고 있다"고 평했다.
김 시인은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경북대 사회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3년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비슬산 사계' '행복 채널' '참, 조용한 혁명' '수상한 시국' 등이 있다. 박종화문학상, 김명배문학상 작품상 등을 수상하고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