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그래, 밀물은 하루에 두 번 차오르지

  • 감정원 독립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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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03 16:19  |  발행일 2025-06-03
감정원 독립영화감독

감정원 독립영화감독

2021년 겨울, 언젠가 잠깐 스쳐지나듯 만난 적이 있는 국악기 연주자로부터 연락을 한 통 받았다. 본인의 첫 단독 공연에 와줄 수 있냐는 것이었는데, 공연을 보고 난 후 타장르 작업자로서 피드백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사업들의 연말정산 건으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시기라 고민이 되었지만, 거절하기에는 변명이 되지 못했다.


공연 당일, 정신없이 바쁜 업무로 하루 종일 굶은 채 급히 택시를 타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나는 그날을 기준으로 그 전의 '나'와 그 후의 '나'로 나뉜다고 종종 얘기하고는 하는데, 하나의 사건과도 같은 날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공연장은 앞산에 위치한 어느 카페의 지하공간이었다. 들어서자마자 공기가 달라짐을 단번에 느꼈다. 어두운 조명 아래 몇 개의 노오란 알전구들이 켜져 있었고, 일찍 도착한 관객들은 드문드문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앉아 미리 세팅된 악기들을 바라보거나 함께 온 이들과 언성을 낮춘 채로 미뤄둔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천천히 공간을 둘러보니 긴장이 되었다. 이내 문이 닫히고 공연이 시작되자 연주자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생전 처음 보는 생황이라는 나무 관악기를 들고 천천히 소리내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의 숨소리 같기도, 땅의 호흡 같기도, 바람의 흐름과도 같이 느껴졌다.


생황, 피리, 태평소를 중심으로 전자 사운드, 가야금, 디저리두, 목소리, 바디퍼커션, 첼로, 퍼커션의 소리로 이어졌다. 총 6개의 곡은 그의 생각과 일상의 시간들이 온전히 담겨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서 바라본 움직임,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이에게 전하는 소리, 이 모든 생각과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까지도. 늘 눈으로 먼저 확인하게 되는 특성을 가진 영화 작업을 하다 보니 귀 기울여 작업을 감각하는 경험은 참으로 생경했다. 눈을 꼭 감고 소리에 집중하자 머릿속에 온갖 풍경들과 인물들, 이야기가 펼쳐졌다. '아!' 나지막이 탄식이 흘러나왔다. 작업에 대한 불안과 고민들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순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하기 위해 하루 종일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찰스 레즈니코프의 시가 떠올랐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한 후 나는 몹시 지쳤다. 이제 나의 일을 해야 할 날이 하루 더 사라졌구나,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천천히, 천천히 나의 힘이 되돌아왔다. 그래, 밀물은 하루에 두 번 차오르지.'(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한 후)


공연이 끝난 후, 집까지 3시간 동안 걸었다. 눈물이 흘렀다.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그래, 괜찮아. 천천히 가보자'고 마음을 다졌다. 소리로 순간을 기억하게 해준, 나를 공연에 초대해준 연주자는 오늘날 나의 든든한 작업 동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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