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자유는 그냥 오지 않았다

  • 신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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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16 06:00  |  발행일 2025-06-15
신경용 금화복지재단 이사장·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 회장

신경용 금화복지재단 이사장·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 회장

형식은 반복되지만, 기억은 희미해진다. 6월의 태극기처럼. 나라를 지켜낸 희생은 해마다 멀어지고, 전쟁은 점점 역사책의 구절로만 남는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누리는 자유는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 자유는 누군가의 결단과 희생, 물러서지 않겠다는 정신 위에 세워졌다. 그리고 그 정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말을 걸고 있다.


경북 칠곡 다부동. 1950년 여름, 이 협곡은 대한민국의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북한군은 대구를 향해 밀고 내려왔고, 대구를 내주는 순간 남쪽에 남을 도시는 없었다. 국군과 미군, 민간 병력까지 마지막 전선을 붙들고 버텼다. 산 하나를 수십 차례 빼앗고 되찾는 접전 끝에 적의 진격은 멈췄다. 총탄보다 뜨거웠던 것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정신이었고, 그 정신이 오늘의 자유를 가능하게 했다.


다부동 전투는 단지 하나의 작전이 아니라, 국가 존립을 지켜낸 분기점이었다. 그 땅을 지켜낸 이름 없는 이들의 희생은 지금도 조용히 말을 건넨다. 지나간 시간을 이어주는 것은 기록이 아니라 기억이며, 그 기억이 모일 때 역사는 공동체의 정체성으로 살아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이 땅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구 반대편 우크라이나에서도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2년 넘게 피난민은 거리를 떠돌고, 시민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다. 공습 사이 교회에 모이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부르며 일상을 이어간다. 자유는 말로만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묵묵히 증명한다.


전쟁은 여전히 누군가의 일상을 무너뜨리며, 그 고통은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고든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우연이나 시간의 결과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결단과 희생, 시대를 이긴 의지가 있었고, 그 유산은 기억되어야 할 과거이자, 이어가야 할 현재의 책임이다. 다부동은 단지 전투의 지명이 아니다. 오늘의 자유와 평화가 어떤 자리에서 지켜졌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역사적 상징이며, 우크라이나는 자유의 가치를 다시 점검해야 할 현실적 경고다.


진정한 평화는 말이나 의례로 지켜지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 위에, 공동체의 책임 위에 세워진다. 기억은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지켜내는 힘이다. 6월의 언덕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은 추모를 넘어,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성찰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다부동에서 우크라이나까지, 그 거리는 멀지만 자유와 책임이라는 하나의 진실로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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