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구 평리1동 주민 김용구(여·77)씨가 '열차촌 기억공간' 앞에서 마을이 변화된 순간들을 설명하고 있다. 구경모 기자
대구 서구 평리1동 주민 김용구(여·77)씨는 6·25전쟁 피란민 정착지에 들어선 '열차촌'의 변천사를 함께해 온 인물이다. 취재진과 만난 김씨는 "열차촌 길 건너편에 살았는데, 처음엔 사람이 사는 데가 아닌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낡고 금간 슬레이트 지붕,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골목길,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를 처음 지나던 날이 떠오른다"며 "집이라기보단 그냥 막사 같았다. 골목구조가 너무 좁고 복잡해서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수 없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열차촌'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 김씨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는 "방 하나에 온 가족이 함께 잠을 자야 했고, 부엌은 겨우 밥을 지을 수 있는 정도였다"며 "화장실은 여러 세대가 공동으로 써야 했고, 밤이 되면 외부인이 골목 안까지 들어와 자주 소란을 피웠다"고 회상했다. 젊은 사람들은 일부러 그 골목을 피해 다녔고, 자신도 굳이 갈 일이 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열차촌' 내 좁고 어두웠던 골목이 넓어지고, 슬레이트 지붕 아래 가려졌던 하늘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때를 아직 잊지 못했다. 그는 "도시재생 사업을 계기로 각 길목마다 벤치와 운동기구가 놓인 쉼터, 주민 커뮤니티 공간 등이 들어섰다. 주민들은 마치 '사랑방 같다'며 좋아했고, 지금은 자연스럽게 '우리 동네'라는 말이 입에 착착 붙는다"며 웃었다. 무섭고 낯설기만 하던 열차촌이 이젠 익숙하고, 예전 기억이 깃든 마을로 느껴진다는 말도 했다. 을씨년스러웠던 열차촌 기억들도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된 듯 보였다. 김씨는 "최근 '열차촌 기억공간'이 조성된 후 몇몇 주민들이 열차촌을 잊지 않기 위해 과거의 일을 일일이 글로 정리해 남기기 시작했다. 이른바 '열차촌 기억 에세이'다. 자신이 살았던 시간과 공간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다. 그 시간들도 '마을의 역사'라는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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