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문화로만 여겨지던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국에도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프랑스 콜마르의 크리스마스 마켓 상점에 방문한 방문객들이 상품을 구경하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거리 곳곳이 붉은 빛으로 물들고, 가게 안에선 캐럴이 흘러나온다. 날은 춥지만 왠지 모르게 설렌다. 겨울이 반가운 이유는 새해가 다가오는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크리스마스가 더 클 것이다. 거리를 가득 메운 크리스마스 조형물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동시에 가슴을 뛰게 한다. 크리스마스는 원래 종교적 행사였지만 본래 의미를 넘어 전 세계가 즐기는 축제가 됐다.
유럽의 문화로만 여겨지던 '크리스마스 마켓'도 이제 한국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원래 중세 유럽에서 시작된 행사인데, 세계적으로 확산돼 겨울을 대표하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영국·프랑스·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이 행사로 연말마다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최근 국내에서도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다. 서울은 물론 대구경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백화점 등 대형 상업시설뿐만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연말 관광 콘텐츠로 크리스마스 마켓을 개최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뢰머광장. <게티이미지뱅크>
크리스마스 마켓의 원형은 전통적으로 마을의 광장(구시가지)에서 열린다. 큰 크리스마스 시장은 광장 중심에 크리스마스 타워라는 큰 탑이 놓인다. 여기서 몰드와인 또는 뱅쇼라고 알려진 글뤼바인(Glühwein)이라는 따뜻한 와인과 초콜릿을 판다. 이곳이 시장의 중심이다. 회전목마와 관람차 등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놀거리가 설치되기도 한다. 주위에는 상점이 즐비하고 기념품을 판매하는 식이다. 14면에서 계속
19세기 석판화 속의 아기 예수 시장 모습. <작자 미상, 위키백과 제공>
◆중세 독일어권서 시작…유명 시장은 500만명 방문
시초는 1298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12월 시장'으로 추정된다. 13~14세기 독일어권 국가와 신성로마제국 지역에선 크리스마스 전 일요일 4번을 포함한 대림절(待臨節) 단식 기간이 끝난 후 하루 동안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시장을 열었다. 시장은 그 지역 제후 허가를 받아 열렸는데, 먹을 것과 겨울나기에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게 했다. 처음엔 빵, 소시지 등 먹거리가 대부분이었지만 시장이 차츰 확대되며 크리스마스 트리, 아이들 장난감 등 다양한 물품이 판매됐다. 이때부터 오늘날 크리스마스 마켓과 가까운 모습이 됐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세계적으로 확산한 건 20세기 후반. 독일계 이민자가 다수 거주하거나, 독일 도시와 자매결연한 지역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미국에는 시카고에 1990년대 후반 들어서 뉴욕과 캐나다 토론토 등으로 확산했다. 프랑크푸르트의 자매 도시인 영국 버밍엄에서는 2001년부터 열리고 있다. 독일어권 '원조'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라 평가받는다. 일본 삿포로에서도 도시 간 교류로 자리잡았다. 뮌헨시와 자매 도시 체결 30주년을 기념해 2002년부터 '뮌헨 크리스마스 마켓'을 개최하고 있다.
페터 베커(Peter Becker)가 그린 1876년의 프랑크푸르트 크리스마스 시장 모습. <위키백과 제공>
크리스마스 시장의 전형적인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양성 때문에 어렵지만, 대개 다양한 지역 특산 음식물과 전통 수공업품이 거래되는 장터다. 그러다보니 지역마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대표하는 상품도 있다. 가톨릭이 강한 독일 뉘른베르크는 '아기예수 시장'이라 불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운영하는데, 뉘른베르크와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전통 상품만을 판매한다. 뉘른베르크 렙쿠헨·슈톨렌(독일식 빵), 금빛 천사 등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품, 마른 자두와 호두로 만든 쯔베츠겐멘레(작은 남자) 인형이 대표적인 상품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호두까기 인형이 유명하다. 19세기 후반 프랑크푸르트에선 호두까기 인형과 쥐의 싸움에 대한 환상적 내용의 동화가 유행했는데, 그때부터 호두까기 인형이 잘 팔렸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마켓의 대표 상품은 트리와 트리 장식품들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과거 독일 영토였던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마켓의 대표 상품은 트리다. 1605년 이 지역 여행기에는 크리스마스에 색종이로 만든 장미꽃과 사과, 설탕 등으로 나무를 장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장식한 나무가 17세기 독일 궁정에서 유행하고, 18세기 이후 영국 하노버 왕조가 이 풍습을 받아들이면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스트라스부르 크리스마스 마켓은 이런 전통에 걸맞게 전나무와 트리에 걸 수 있는 장식품을 판매한다.
이렇다 보니 크리스마스 마켓은 단순한 겨울 축제를 넘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수백개의 가판 상점이 열려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상품을 알릴 수 있는 판로가 된다. 이 기간 수출 상담 등이 이뤄지기도 한다. 시장 개장과 함께 공연, 체험 등의 문화 행사가 대거 열려 즐길거리 또한 풍부하다. 유명한 시장은 매년 500만명 이상 방문할 정도니 숙박·외식·교통 등 연관 산업도 활기가 돈다.
성탄절을 열흘 여 앞둔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크리스마스 광화문 마켓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서 최근 확산…집객 효과로 지자체도 운영
한국에는 2010년대 도입돼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확산하고 있다. 백화점 등 유통업계에서 유럽 정통의 재현을 내세우며 추진했다. 비유럽권에서 유럽풍 크리스마스 마을의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발길을 끈다. 엔데믹 이후 유럽 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백화점 실내 전체를 동화 속 마을처럼 꾸며놓은 '크리스마스 빌리지'는 사전예약 경쟁을 뚫어야만 방문할 수 있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집객 효과가 두드러져 유통업계뿐만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하나둘씩 운영을 이어나간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광화문마켓'은 2022년 시작해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지난해 164만명 이상이 방문하고 소상공인 업체 141곳이 참여해 매출액 7억원을 올렸다. 대구 남구가 주최하는 '앞산 크리스마스 축제'도 큰 호응을 얻으며 매년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대구 시민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더현대 대구 1층에서 열리는 동화 숲 속 크리스마스 공방 'Atelier de Noel' 포토존. <더현대 대구 제공>
더현대 대구는 더현대 대구 3층과 지하 2층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오는 31일까지 연다. <더현대 대구 제공>
대구·경북에서도 열린다. 현대백화점 더현대 대구는 올해 역대 최대 규모로 크리스마스 테마를 기획했다. 올해 테마는 '해리의 크리스마스 공방'. 산타와 루돌프를 대신해 크리스마스 지킴이가 된 아기 곰 해리의 여정에 동참하는 방식으로 마켓의 공간을 연출했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더현대 대구 3층과 지하 2층에서 오는 31일까지 운영된다. 같은 기간 1층에 동화 숲 속 크리스마스 공방 'Atelier de Noel', 9층 게이츠 가든에 미디어아트 '루미에르벨: 빛과 마법의 정원' 등이 마련돼, 다양한 공간에서 각기 다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지난해 대구 남구의 앞산 크리스마스 축제 모습. <영남일보 DB>
대구 남구는 20~21일 도심 속에서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빛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앞산 크리스마스 축제'를 앞산 빨래터공원에서 연다. 빛 조형물, 대형 트리 등으로 따뜻한 연말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역 소상공인 연계 프리마켓과 크리스마스 테마 체험존 등 부대 행사를 확대 개최해 관광 활성화를 도모할 예정이다.
경북 칠곡군은 왜관역 광장 일대에 '2025 럭키칠곡 크리스마스 마켓'을 지난 6일 개장했다. 왜관역 광장 전체를 하나의 겨울 정원으로 꾸몄다. 행사장에서는 크리스마스 용품을 비롯해 지역 수공예품, 농특산품, 겨울 간식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가족 단위 방문객들을 위한 미니 트리 만들기, 케이크·쿠키 만들기, 소원등 달기, 군밤 굽기 체험 등 체험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마련된다. 남은 개장일은 오는 20일, 24일, 25일로 오후 4~9시까지 진행된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지역 소상공인과 주민, 관광객 모두가 따뜻한 연말을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한 행사"라며 "지역 경제 전반의 활력을 높이는 겨울 축제로 자리 잡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경북 봉화 '분천산타마을' 전경. 올해는 20일부터 내년 2월5일까지 운영된다. <영남일보 DB>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마켓 모습은 아니지만, 경북 봉화군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행사가 열린다. 소천면에서 '분천산타마을'이 20일부터 내년 2월15일까지 운영된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에는 봉화 지역 예술인 등이 참여하는 음악 공연, 25일에는 어린이 전용 공연 '뽀로로 싱어롱' 등의 이벤트가 개최된다. 이밖에도 행사장에 산타의 행복 우체국, 눈꽃 스케이트장, 산타 썰매, 포토존, 게릴라 이벤트, 푸드 트럭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마련된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TK큐] 보이지 않는 사람까지 생각한 설계…웁살라의 이동권](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12/news-m.v1.20251215.bfdbbf3c03f847d0822c6dcb53c54e24_P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