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다시, 북한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 김준도 대구경찰청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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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2-30 17:38  |  발행일 2025-12-30
김준도 대구경찰청 경위

김준도 대구경찰청 경위


연말이 되면 자연스럽게 기부를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를 돕겠다는 결심이라기보다, 우리가 어떤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에 가깝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의 기부는 그래서 선택이자 질문처럼 느껴진다.


몇 해 전, 나는 북한 아동을 돕는 지정 기부를 한 적이 있다. '아이'라는 존재 앞에서 별다른 이유를 찾지는 않았다. 어디에서 태어났든, 어떤 환경에 놓여 있든, 아이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런데 최근 같은 취지의 기부를 다시 하려다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더 이상 북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지정 기부는 운영되지 않고, 현재는 국내 아동 지원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국내 아동을 돕는 기부로 방향을 바꾸었지만, 지정 기부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마음 한켠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이제 북한의 아이들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그런 질문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 북한은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는 이른바 '두 국가론'을 공식화했다. 남과 북을 하나의 민족 공동체로 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남북 관계를 둘러싼 환경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점에서, 이 변화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안임이 분명하다. 다만 이러한 관계 설정의 변화가 곧바로 서로에 대한 관심까지 접어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역사적으로 분단을 겪은 뒤 통일을 이룬 독일의 사례는 여러 시사점을 남긴다. 서독은 통일 이전에 동독을 외교적으로 사실상의 국가로 대하면서도, '하나의 독일'이라는 인식을 유지했다. 이른바 '지붕이론'이다. 서로 다른 체제를 인정하되, 상대를 완전히 단절된 타자로 보지는 않았다. 입장은 달랐지만, 상호 간의 책임은 외면하지 않았다.


북한 아이들은 어떤 체제를 선택한 적이 없다. 분단도, 대립도 그들의 결정이 아니었다. 그저 태어난 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북한의 아이들을 도움의 대상에서 조용히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북 관계의 현실적인 제약과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어려움이 아이들에 대한 관심까지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연말, 나는 국내 아동을 위한 기부를 선택했다. 마음 한편에는 언젠가 북한 아동을 위한 지정 기부가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았다. 지금은 제도와 현실이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아이들을 향한 관심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 지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 지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다시 북한의 아이들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아이들을 향한 관심과 도움만큼은, 경계선을 넘어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김준도<대구경찰청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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