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규 사회2팀장
국가는 규제를 통해 질서를 만든다. 그러나 경험칙상 규제는 질서를 만들지 않는다. 단지 흉내를 낼 뿐이다. 질서는 늘 그랬듯이 설계의 결과다. 규범은 질서를 명령할 수 있지만, 질서를 작동시키지는 못한다. 작동하지 않는 규범은 곧 상징으로 전락하고, 상징만 남은 규제는 현장에서 무용지물이다.
우리나라 행정이 반복적으로 실패해온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불합리한 관행을 '금지'하면 사라질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는다. 현실의 작동원리를 외면한 채 규범만 앞세우는 태도의 귀결점이다. 그래서 규제는 늘 현장에서 마찰을 빚고, 비정상은 형태만 바꾼 채 지속돼 왔다. 규제는 늘상 강화되지만 좀처럼 질서로 정착되지 않는다. 행정은 단속과 유예 사이를 챗바퀴 돌듯 늘 제자리를 오간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의 미나리하우스 문제도 그런 행정의 축소판이었다. 하우스 내 음식점 영업은 명백한 위법 행위다. 위생·안전·주거 질서를 동시에 무너뜨린다. 그럼에도 관행은 오래 지속됐다. 법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 법이 작동하는 시스템이 없어서다. 단속을 하면 당사자들의 생계가 무너지고, 눈을 감으면 질서가 무너지는 딜레마가 수차례 반복됐다.
그래서 선택은 늘 유예였다. 엄밀히 말해 '방치'였다. 방치는 관행을 제도처럼 굳게 만든다. 이번에 달성군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 오래된 행정의 무기력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데 있다. 단속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속에만 의존하지도 않았다. 행정 초점은 '금지'가 아니라 '이동'에 맞췄다.
핵심 현안은 어떻게 보면 단순했다. '하지 말라'가 아니라 '그럼 어디로 가야 하는가'였다. 비정상적 소비공간에 묶여 있던 미나리 재배를 정상적 유통체계로 옮겨놓는 일은 결국 '설계의 문제'였다.
그 종착지가 서울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이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가격 형성, 품질 검증, 책임 소재가 동시에 작동하는 공적 질서 공간이기 때문이다. 화원 미나리의 정식 유통망 진입은 편법 재배 생태계가 제도권 경제권으로 편입됐음을 의미한다.
더 중요한 건 행정의 태도였다. 달성군은 '축제'와 '상설판매장'이라는 단기처방을 제시했지만 이를 강요하진 않았다. 최종 선택은 농가에 맡겼다. 작목반은 일회성 소비를 거부하고 지속가능한 시장 편입을 택했다. 행정이 농민을 관리대상이 아닌, 정책 주체로 응대했기에 가능했다.
행정이 설계자에 머물고 결정권을 현장에 남겨두었을 때 정책은 자생력을 얻는다. 이후의 지원은 기술적이되 치밀했다. 물류비 지원, 포장단위 재설계, 온라인 유통과 기부제 연계…. 작은 조치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질서 있게 정렬되며 구조를 바꿨다.
이 사례의 본질은 미나리가 아니다. 규제의 작동 방식이다. 국가는 무엇을 금지할 수 있지만 현실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국가는 명령자가 아니라 이동 경로를 설계하는 존재여야 한다. 질서는 통제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 가능한 경로'가 주어졌을 때 형성된다.
출구 없는 규제는 갈등을 증폭시키고, 출구 있는 규제는 질서를 재배치한다. 전자는 권위의 과시로 끝나지만 후자는 현실적 변화를 유도한다. 달성군의 화원 미나리 정책은 어떤 방식으로 규제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기준점을 제시했다. 이 기준이 예외로 남을지, 아니면 행정의 새로운 상식으로 자리 잡을지는 행정기관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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