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 소설가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청포도')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광야')
1944년 1월16일, 북경 내1구 동창호동 1호(일본 영사관 감옥 추정)에서 이육사가 순국했다. 친척 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병희가 육사의 시신을 수습했고, 아우 원창이 화장된 형의 유해를 인계받아 서울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오늘 이육사 기일을 맞아 '청포도'와 '광야'를 또 읽어본다. 시인이 가입해 활동했던 의열단을 장편소설로 형상화했던 일도 떠오른다. 하지만 육사의 시에 평설을 덧붙일 생각은 없다. '뉴욕 지성계의 여왕' 수잔 손택이 기억난 때문이다.
1933년 1월16일 태어난 손택은 33세에 펴낸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해석을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가하는 복수"로 규정했다. 그는 "예술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예술을 예술 그 자체로 경험하라"고 강조했다. 손택은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고, 전쟁터 사라예보로 찾아가 공포에 떨고 있는 그곳 사람들에게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해 전화 속에서도 예술을 창조하고 감상할 수 있는 존엄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역설했다.
1988년에는 서울을 방문, 한국 정부에 구속 문인 석방을 요구했다. 어찌 우리가 손택의 혜안을 거부할 것인가! 지식 과시용으로 육사의 시를 아무렇게나 해석한 풀이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진심으로 이육사를 기리는 마음만이 가치가 있다.
박지극은 시 '염불'을 통해 "염불은/ 망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자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는 통찰을 보여주었다. 겉치레 행사가 아니라 참된 추모심으로 이육사를 기리는 사람만이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 눈 내리고 매화 향기 아득한 광야를 하염없이 걷고 있는 이육사를 함부로 모독해서는 안 된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