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달콤함에 가려진 ‘플라스틱 산’…밸런타인데이의 역설

  • 조현희
  • |
  • 입력 2026-02-12 14:23  |  발행일 2026-02-12
밸런타인데이 기간 판매되는 초콜릿 상품들이 과대포장으로 환경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게티이미지뱅크>

밸런타인데이 기간 판매되는 초콜릿 상품들이 과대포장으로 환경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게티이미지뱅크>

"받을 때마다 쓰레기가 한 더미씩 나와서 부담스러워요. 받는 입장에서 고맙긴 하지만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어요."


최근 몇 년 사이 환경에 관심이 생겼다는 직장인 박모(27·여)씨는 이제 기념일이 반갑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선물을 받을 때마다 포장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용기부터 종이 박스, 비닐, 스티커까지 종류도 제각각이다. 박씨는 "분리배출을 하려고 하면 재질이 모두 다른 데다 양도 만만치 않아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며 "택배로 선물을 받을 경우 그 부담은 배가 된다"고 털어놨다.


달콤한 기념일로 자리잡은 2월14일 밸런타인데이. 가까운 사람에게 호감을 표하거나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이날 초콜릿을 선물한다. 하지만 무심코 주고받는 초콜릿 뒤에는 썩 달콤하지 않은 역설이 있다. 선물용 제품의 고질적 문제인 과대포장은 해마다 막대한 양의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생활폐기물의 35%는 포장폐기물인데, 기념일과 명절 연휴 기간에 폐기물이 급증한다.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가 재배되는 지구 반대편의 열대우림은 갈수록 황폐화되고 있다. 오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화려한 초콜릿에 가려진 환경 오염의 실태와 지속가능한 기념일을 위한 대안을 살펴봤다.


대구의 한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밸런타인데이 선물 상품. 초콜릿뿐 아니라 캐릭터 굿즈까지 포함돼 포장 규모가 한층 커졌다. 조현희기자

대구의 한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밸런타인데이 선물 상품. 초콜릿뿐 아니라 캐릭터 굿즈까지 포함돼 포장 규모가 한층 커졌다. 조현희기자

◆8개입 초콜릿 개봉하니 쓰레기 13개…비대면 선물로 더욱 속출


지난 10일 찾은 대구의 한 편의점. 입구에서부터 '밸런타인데이' '2개 이상 구매시 40% 할인' 등을 외치고 있었다. 판매 중인 초콜릿들을 살펴보니 초콜릿뿐 아니라 캐릭터 굿즈까지 포함돼 있었고 이중, 삼중 포장이 기본이었다. 다양한 상품 구성으로 포장 규모가 한층 커졌고 가격대 또한 비교적 높게 형성돼 있었다.


페레로로쉐 하트 8구 제품에서 초콜릿 1개를 뜯는 데 발생한 쓰레기는 총 6개에 달했다. 재활용도 모두 불가능했다. 조현희기자

페레로로쉐 하트 8구 제품에서 초콜릿 1개를 뜯는 데 발생한 쓰레기는 총 6개에 달했다. 재활용도 모두 불가능했다. 조현희기자

편의점에서 파는 초콜릿 상품을 직접 뜯어 분석해봤다. 페레로로쉐 하트 8구 제품에서 초콜릿 1개를 뜯는 데 나온 쓰레기는 총 6개에 달했다. 하트 모양의 투명 플라스틱 케이스를 열기 위해선 봉인용 스티커를 먼저 제거해야 했다. 케이스를 여니 초콜릿들은 각각 금박 포장지에 싸여 담겨 담겨 있었고, 그 밑에 금색 플라스틱 받침 접시가 한 번 더 등장했다. 하단의 케이스 위에는 별도의 제품 설명서가 올려져 있었다. 개별 초콜릿 포장지와 케이스를 제외하면 포장을 위한 포장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투명 플라스틱 케이스의 재질도 OTHER(복합재질)로, 나온 쓰레기 중 재활용이 가능한 용품은 없었다. 초콜릿 8개를 모두 개봉할 경우 발생하는 쓰레기는 13개에 달했다.


밸런타인데이 기간 판매되는 초콜릿 상품들이 과대포장으로 환경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게티이미지뱅크>

밸런타인데이 기간 판매되는 초콜릿 상품들이 과대포장으로 환경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환경부의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제4조2항 관련 '제품의 종류별 포장방법에 관한 기준'에 따르면, 제과·선물류(종합제품)의 포장 횟수는 2차 이내, 공간 비율은 20% 이하(종합제품은 25% 이하)다. 그러나 낱개 포장이나 내용물의 부스러짐 등을 방지하기 위해 넣는 받침접시는 포장공간 비율 및 포장횟수의 적용 대상 포장으로 보지 않는다. 명절 기간 외에는 지자체 단속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탓에 해당 기준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로 인해 밸런타인데이 등 각종 기념일마다 선물용 제품을 중심으로 과도한 포장이 반복되고 있고, 이에 쓰레기, 자원순환 등의 환경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의 밸런타인데이 베스트 선물 추천 메뉴. <카카오톡 선물하기 캡처>

카카오톡 선물하기의 밸런타인데이 베스트 선물 추천 메뉴. <카카오톡 선물하기 캡처>

여기에 '비대면 선물하기' 문화가 확산하면서 이 같은 문제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비대면 선물하기는 온라인상에서 선물을 전달할 수 있다는 간편함으로 인기를 끌고 있고, 대형마트·편의점 등 유통업계에서도 이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문제는 비대면 선물인 만큼 택배로 상품이 전달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2차 포장재다. 수송을 목적으로 하는 제품 포장과 평균 매출액이 500억원 미만인 기업에는 환경부의 포장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종이 박스는 물론 제품 파손을 막기 위한 비닐 완충재(뽁뽁이), 냉장 유지를 위한 드라이아이스와 아이스팩 등이 더해져 환경 부담이 배가 된다.


최근에는 작은 초콜릿바 1개를 15개 시켰는데, 15개의 개별 상자에 담겨 배송된 모습이 온라인상에 공개돼 논란이 됐다. 이에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의 사연이 이어지면서 온라인 배송의 과대포장 관행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초콜릿 수요 증가로 카카오 재배의 확장으로 아프리카 열대우림 지역의 대규모 삼림 벌채가 가속화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초콜릿 수요 증가로 카카오 재배의 확장으로 아프리카 열대우림 지역의 대규모 삼림 벌채가 가속화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라지는 열대우림, 보이지 않는 '물 사용' 문제도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 재배의 확장도 무시할 수 없다. 카카오 재배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열대우림인 콩고 분지에서 이뤄진다. 아프리카 열대우림 약 60~70%를 차지하는 이곳은 약 1억8천만 헥타르의 숲과 다양한 고유종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초콜릿 수요 증가에 따른 카카오 재배의 확장으로 이 지역의 대규모 삼림 벌채와 서식지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카메룬의 엔키 국립공원, 콩고민주공화국의 오카피 야생동물 보호구역, 마이코 및 비룽가 국립공원 등이 있다. 이곳들은 산림 코끼리, 유인원, 서부고릴라 등 멸종위기 동물들의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는데, 서식지 파괴 위험이 큰 지역으로 분석됐다.


또 초콜릿은 많은 물을 사용하는 가공식품 중 하나다.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수자원 이용을 목표로 활동하는 '물발자국 네트워크'에 따르면, 초콜릿 1t당 사용되는 물은 평균 1천719만6000ℓ. 50g짜리 초콜릿 하나를 사먹을 때마다 가정용 욕조 3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의 물이 소요된다.


화장품 브랜드 러쉬의 매장 내부. 포장 없이 날 것 그대로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러쉬 제공>

화장품 브랜드 '러쉬'의 매장 내부. 포장 없이 날 것 그대로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러쉬 제공>

◆재활용한 가능한 포장재·지속가능한 원두는 어떨까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초콜릿을 소비할 수는 없을까. 친환경 기업의 대표주자인 영국의 화장품 브랜드 러쉬는 탈(脫)포장에 힘쓰고 있다. 러쉬는 한국을 포함한 52개국에서 전 제품의 66%를 포장이 없는 '네이키드(naked)'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또 영국 러쉬의 '그린 허브(GreenHub)'는 재활용 용기를 모아서 다양한 방식으로 순환경제를 실현하는 곳인데, 2024년 말 기준 약 1천700t의 자원순환을 실천했다. 영국에서 회수한 재활용 용기는 약 90만개이며, 이 중 81%는 퇴비화하거나 재활용 및 재사용했다. 한국의 회수량은 연평균 20만개이다. 박씨는 "러쉬의 화장품도 주변에서 선물로 많이 주고 받는데, 초콜릿도 꼭 화려한 포장이 아니어도 선물로 전할 수 있다"며 "포장이 불가피하다면 재활용이 가능하거나 퇴비화할 수 있는 재질을 쓰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롯데웰푸드의 착한 카카오 프로젝트 로고가 삽입된 가나초콜릿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경작된 서스테이너블 카카오빈. <롯데웰푸드 제공>

롯데웰푸드의 '착한 카카오 프로젝트' 로고가 삽입된 가나초콜릿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경작된 '서스테이너블 카카오빈'. <롯데웰푸드 제공>

롯데웰푸드는 대표 제품인 '가나초콜릿'에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재배된 가나산 카카오 원두를 사용하는 '착한 카카오 프로젝트'를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에 따라 공수하는 가나산 '서스테이너블 카카오빈(Sustainable Cocoa Bean)'를 가나초콜릿에 적용하는 것. 서스테이너블 카카오빈은 아프리카 가나를 방문해 현지 농가를 점검하고 카카오 묘목을 지원하며 시작한 '지속가능 카카오 원두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된다.


권정택 대구환경운동연합 부의장은 "소비의 측면에서만 말한다면, 기후위기 시대는 소비를 줄이는 게 덕목일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소비를 해야 한다면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현명한 소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과대포장된 상품을 외면하는 것, 공정무역 제품을 선택하는 것, 비대면 선물을 자제하는 것이 탄소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며 "무엇보다 사랑 표현은 화려한 포장을 내세우기보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전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자 이미지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