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뫼의 음유시인(音流示人)] 가곡은 시를 남긴다

  • 강한뫼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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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2-20 06:00  |  발행일 2026-02-20
슈베르트 초상화. 빌헬름 아우구스트 리더의 프란츠 슈베르트(1875). <빈 박물관 소장>

슈베르트 초상화. 빌헬름 아우구스트 리더의 '프란츠 슈베르트'(1875). <빈 박물관 소장>

◆성악, 언어와 함께 듣는 음악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Die Forelle, Op.32, D.550)'를 떠올릴 때, 우리는 이 작품을 두고 시가 특별히 기억에 남았다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독일어를 모르는 감상자에게 이 곡은 가사보다 선율과 분위기를 비롯한 음악적 인상으로 남는다. 직접적인 제목과 맑고 경쾌하게 흐르는 피아노 반주, 그리고 노래의 움직임은 '송어'가 사는 강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시가 송어를 잡는 낚시꾼의 모습을 제3자인 나그네의 시점에서 묘사하는 내용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듣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 가운데 유명 아리아 '잠들지 말라(Nessun Dorma)'를 들으며, 극 중 칼라프의 마음과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은 적다. 오히려 높은 음역으로 울려 퍼지는 "빈체로!(Vincerò, 이기리라!)"라는 외침이 음악적 감동으로 남아, 뒤늦게 가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편이다.


이처럼 외국어로 된 성악 작품을 들을 때 우리의 감상은 성악가의 음색과 성량, 선율과 화성의 아름다움, 그리고 음악적 긴장과 해소가 주는 감동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감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성악이 단지 인간의 목소리를 음악적 재료로 사용하기만 한 장르였던가.


성악은 '시'와 '이야기'와 같은 문학예술을 노래하는 장르이며, 그 내용은 음악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언어를 함께 이해하며 들을 때, 우리는 그 작품을 한층 더 깊고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다. 성악곡에서 언어는 단순히 가사나, 음악의 종속 요소가 아니다. 음악이 출발하는 근원이자, 음악이 표현하고 있는 의미를 지탱하는 토대다. 그러니, '무엇을 노래하는가'를 알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 감상이, 과연 이 장르를 온전히 경험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프란츠 슈베르트의 Die Forelle 손글씨 사본, 1817년 출판. <위키미디어 제공>

프란츠 슈베르트의 'Die Forelle' 손글씨 사본, 1817년 출판. <위키미디어 제공>

◆말이 이해될 때, 음악은 무엇을 하는가


최근 한국어로 제작된 창작 오페라를 관람하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했다. 공연을 보고 나온 이들의 평이 "음악이 좋았다"가 아니라, "극이 재미있었다"는 말이었다.


모국어로 전달되는 노래를 들을 때 우리는 음악보다 먼저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언어는 의미를 담은 정보이며. 모국어는 특별한 노력 없이 곧바로 인식된다. 우리의 뇌는 소리 자체보다 의미 정보를 우선 처리한다. 그래서 음악의 인상보다 이야기의 흐름과 상황이 먼저 기억에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경험은 일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공부할 때 가사가 있는 음악을 틀어 놓으면 오히려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던가. 들려오는 말의 의미가 계속해서 의식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20세기 최고의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의 2023년 8번째 내한공연. 앵콜곡 그라나다 공연 장면. <강화 제공>

20세기 최고의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의 2023년 8번째 내한공연. 앵콜곡 '그라나다' 공연 장면. <강화 제공>

그렇다면 언어가 먼저 인식된다고 해서, 음악의 역할이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일까. 성악은 본래 음악의 구조 안에 언어가 놓여 있는 예술이다. 모국어로 전달되는 노래를 들을 때 우리는 의미를 먼저 따라가게 되지만, 그렇다고 말과 음악을 따로 나누어 듣는 것은 아니다. 언어와 음악을 하나의 흐름 속에서 통합된 상태로 받아들인다.


성악에서 음악은 단순히 내용을 설명하는 기능에 머물지 않는다. 이미 이해된 말이 어떻게 느껴지고,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음악은 그 정서적 방향을 형성한다. 노랫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의미와 정서를 함께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 안에서 문장이 어떤 호흡을 갖고, 어떤 속도로 흐르며, 또 어떤 감정의 결로 전달될 것인가 하는 것이 작곡가의 문학적 해석과 표현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강한뫼 한국가곡 연재 프로젝트 뫼월지가 썸네일. <본인 제공>

강한뫼 한국가곡 연재 프로젝트 뫼월지가 썸네일. <본인 제공>

◆한국가곡: 모국어로 노래한다는 것


'한국가곡'은 한국어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시와 음악이 함께 받아들여지는, 진정한 의미의 가곡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필자가 우리말로 된 시를 위한 음악, 곧 한국가곡을 작곡하는 일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학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가곡의 감상은, 글을 읽는 행위를 전제로 한 문학예술 감상에 청각을 동원하는 일이다. 이는 문자적 해석에만 의존된 시 감상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흥미를 더한다. 노래라는 보편적인 매체를 통해 시를 보다 자연스럽게 접하게 한다는 점에서, 가곡은 우리의 문학과 음악, 두 예술의 지속과 확산에 기여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가곡을 쓰는 일은 단순한 개인적 창작을 넘어, 동시대 대한민국 예술가로서 책임과 사명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2022년 5월부터 대구의 성악가들과 협업하여 필자의 가곡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유튜브에 연재하는 '뫼월지가'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가곡을 작곡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다. 우리가 읽는 대로, 말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문장이 들리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시를 여러 차례 소리 내어 읽는다. 반복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문장을 어떻게 읽는지를 살핀다. 선율은 그 읽기의 흐름 위에 놓인다.


선율을 만든다는 것은, 이미 말 속에 존재하는 높낮이와 리듬, 호흡을 발견하고 정리하는 일에 가깝다. 노래는 결국 '문장을 어떻게 읽는가'에서 시작된다. 문장의 호흡과 선율의 호흡이 어긋나지 않도록 하고, 말의 억양과 음악의 강세가 서로를 거스르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음악이 문장의 흐름을 흐리거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순간, 노래는 어색해진다. 애국가의 '동해 물과'가 '동, 해물'로 들리는 사례는 그 단적인 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가 품은 비유와 상징의 의미를 음악으로 풀어내고자 할 수도 있다. 문학적 해석을 음악적으로 제시하려는 방식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것이 가곡에서 음악이 맡아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추상적인 예술이기에, 의미를 소리로 치환한 바에 대한 작곡가의 의도를 설명하기 위해서 또 다른 언어를 불러와야만 하기 때문이다.


가곡에서 음악은 숨겨진 의미를 설파하기보다, 문장의 표면에 서린 풍경과 울림을 담는 그릇과 같다. 시의 이해와 해석은 어디까지나 남겨진 문장을 받아들이는 이의 몫으로 남겨둘 일이다. 노래가 지나간 뒤에도 문장은 남아야 하고, 그 문장이 오래 머무는 이유는 음악이 남긴 여운 때문이어야 한다. 오직 문장을 노래하는 일. 그래서 가곡을 완성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감상자에게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시문이 아름다웠는가."


강한뫼 작곡, 윤동주 시 서시 악보 첫 페이지. <본인 제공>

강한뫼 작곡, 윤동주 시 '서시' 악보 첫 페이지. <본인 제공>

◆시를 기억하기 위한 음악


어린 시절 불렀던 동요는 세월이 지나도 입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선율과 함께 잊히지 않는 것은 노랫말이다. 시험 내용을 외우기 위해 음률을 붙였던 것처럼, 음악과 언어가 결합될 때, 언어는 오래 기억된다.


가곡은 시를 위해 음악의 힘을 빌리는 장르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한 개인의 시선(視線/詩線)과 태도, 그리고 그것을 담아낸 문장을 사람들의 입과 기억 속에 남기는 일이다. 어쩌면 노래를 만든다는 것은 아름다운 문장을 남기는 일을 넘어, 각자가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말하는 법을 전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시를 잃지 않고 싶다."


노래는 시를 각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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