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순 〈전〉경북대학교 초빙교수
고물가와 고환율, 경제적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청년들은 왜 만 원짜리 '두쫀쿠' 한 조각에 열광하는가? '두바이 쫀득 쿠키', 일명 두쫀쿠 열풍의 끝자락에서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기성세대의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두쫀쿠 열풍이지만, 젊은 세대의 시각에서는 저렴하지만 가장 확실한 행복이라는 점에서 공감의 문을 열어보자.
다니엘 캐니먼은 인간은 경험을 평가할 때 가장 강렬했던 순간(Peak)과 마지막 순간(End)의 평균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은 시간의 과정 전체를 완벽하게 만들기보다는 감정적인 극치와 마무리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경험 전체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갈수록 치솟는 물가와 아예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고공행진 하는 아파트값, 평생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다는 절망감, 내 집 마련이라는 미래의 꿈은 이미 삭제되어 휴지통에 보내버렸다. 하루 종일 팍팍한 직장 생활과 일상의 복잡한 불안을 견디다. 퇴근길에 먹는 초코 쿠키 한 조각은 그날 전체의 기억을 행복으로 치환하는 가성비의 극치인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을 즐기는 것은, 적극적인 생존전략이며, 무너지는 멘탈을 부여잡기 위한 가장 이성적인 방어 기제인 셈이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청년 시절, 졸업하면 당연히 일자리를 얻고, 가정을 꾸리고 돈을 벌면, 내 집 장만을 할 수 있다는 꿈을 꾸며 살아왔고 꿈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원하는 직장을 구하는 것, 결혼을 하고 집을 사는 것도 어렵기는 다 마찬가지다. 평범한 월급쟁이로는 집을 산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시대, 인간은 거창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참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확실한 이득, 바로 두쫀쿠를 택하는 위험 회피형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백만 원의 적금보다 만원의 초코 쿠키가 주는 즉각적인 효용이 더 크고 확실한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가시화도 더욱 선명해졌다. 집값과 주식폭등에 벼락거지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예전에도 빈부의 격차는 있었지만, 지금은 그 차이가 실시간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연예인과 상위 계층, 인플루언서들의 소비가 일상의 기준처럼 보이고 이들의 편집된 삶의 단편은 우리의 일상과 뒤섞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타인의 '편집된 삶'을 하루에도 수십 번 바라보면서, 자기 삶은 상대적으로 정지된 것처럼 느낀다. 결핍은 실제 소득보다 비교에서 더욱 강화된다. 상대적 박탈감의 보상 방식으로서의 소비, 즉 집, 자산 등 미래는 멀고 불확실한데, 두쫀쿠는 지금 당장 소유 가능하다. 젊은이들의 선택은 '살 수 있는 사치' '인증 가능한 만족'으로 이동한다. 두쫀쿠의 인증은 자랑이기보다 적어도 나도 이 흐름 안에 있다는 최소한의 소속 증명이 되는 것이다.
장 보들리아드는 소비는 가치체계라고 한다. 소비는 사용 가치가 아니라 기호(sign)를 소비하는 것이다.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이 의미하는 이미지를 산다는 것이다. 두쫀쿠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가치를 소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소비가 결핍을 잠시 잊게 해주지만,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그들이 두쫀쿠에 기대지 않아도 될 사회적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단기적 희망 회로가 아니라 장기적 희망이 작동하는 구조를 복원해야 한다. 노력하면 보상받을 수 있다는 예측 가능성, 오늘의 절제가 내일의 자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구조가 회복될 때, 굳이 자극적인 현재에 모든 의미를 걸지는 않을 것이다. 두쫀쿠를 치환할 가치는 다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사회를 복원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다시 꿈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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