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세계 연극의 날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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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25 19:59  |  수정 2026-03-25 20:00  |  발행일 2026-03-26
정만진 소설가

정만진 소설가

국제극예술협회(International Theatre Institute, 약칭 ITI)는 세계 최대 공연예술기구이다. 1948년 유네스코 산하 기관으로 창립된 ITI에는 현재 108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1961년 ITI는 비엔나에서 열린 제9차 총회 때 '세계 연극의 날'을 제정했다.


세계 연극의 날은 3월27일이다. ITI는 해마다 세계 연극의 날을 맞아 기념 메시지를 발표해 왔다. 1962년의 첫 메시지는 프랑스 시인 장 콕토가 썼고, 2025년에는 그리스 연출가 테오도로스 테르조풀로스가 썼다.


연극이라면 이탈리아 연출가 루키노 비스콘티가 남긴 말이 떠오른다. "현대의 관중은 매스미디어의 범람에 지쳐 진정한 예술성을 갈망하고 있다. 연극은 무대극 본연의 리얼리티를 찾을 때 앞길이 밝을 것이다."


차범석의 지적도 잊을 수 없다. "연극이 지역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러나 교육적 수단방법으로 가장 적합한 연극이 지금까지는 가장 등한시되고 천대를 받아왔다. 먼 앞날을 위해서 우선 학교 연극부터 개발해야 한다."


차범석이 남긴 희곡에 '산불'이 있다. 루키노 비스콘티가 강조한 리얼리티 충만 작품이다. 국군이 대밭에 불을 지르면 숨어 있던 남자가 뛰쳐나와 총살되고, 그의 연인은 양잿물을 마시고 자살한다. '산불'은 우리 민족에 얼룩진 인간소외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배신하는 쪽보다 배신당하는 쪽이 더 큰 상처를 입는다." 차범석의 말이다. "배신하면 배신당한 것보다 더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말이다. 둘 다 교훈을 주지만, 차범석의 말은 리얼리티이고 셰익스피어의 말은 관념이다.


그에 견줘 "기만과 배신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소포클레스의 말은 인간에 대한 참담한 부정에 불과하다. 정반대되는 인식을 노래한 '서경별곡'이 훨씬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느냐. 천년을 홀로 지낸들 믿음이야 그치겠느냐."


한문으로 옮겨진 내용만 전하는 고려의 '목계가'도 마찬가지 깨달음을 준다. "나무로 만든 닭이 소리쳐 울 때라야 나의 어머니는 비로소 늙기 시작하리라." 매스미디어 범람에 지친 현대인의 공동체 회귀본능을 따스하게 달래주는 진정한 절창이다. 무릇 예술가는 잔혹 내용이 많던 독일 전래 이야기를 도덕과 온정 넘치는 동화로 재탄생시킨 그림 형제의 작가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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