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호 새마을문고 대구북구 이사
인간은 부조리 앞에서 어떻게 흔들리고, 또 어떻게 버텨낼까?
이 질문은 재난의 순간마다 우리가 끝내 외면할 수 없는 물음이다.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는 전염병으로 봉쇄된 도시를 통해, 인간이 '부조리' 앞에서 흔들리고 버텨내는 과정을 그려낸다. 평범한 일상으로 굴러가던 오랑은 쥐의 떼죽음과 확진 소식으로 균열을 맞는다. 사람들은 처음엔 이를 부정하며 불편한 진실을 미루려 한다. '설마 우리에게 그런 일이'라는 태도는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잠시 안도에 기대려는 마음에 가깝다. 까뮈는 이 지점에서 재난의 본질을 드러낸다. 재난은 병의 확산이 아니라, 진실을 외면하고 책임을 유예하려는 태도가 함께 번져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봉쇄가 길어질수록 공포는 또 다른 얼굴로 바뀐다. 처음의 불안과 분노는 시간이 지나며 무감각으로 굳어진다. 불확실성은 사람들을 현재에만 매달리게 만들고, 타인의 고통은 숫자로 멀어진다. 도시는 보이지 않는 선으로 갈라지고, 각자는 생존과 고립, 혹은 이익 사이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페스트'는 인간의 이기심을 드러내면서도, 그것이 불안과 상실, 통제할 수 없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불편한 공감을 준다. 과연 나였다면 다르게 행동했을까, 혹은 나도 모르게 그것을 '남의 일'로 밀어내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이 소설은 절망에 머물지 않는다. 위기 속에서도 '해야 할 일'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리외는 영웅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끝까지 감당하는 사람이다. 그는 환자를 돌보고 기록하며 다시 다음 환자에게로 나아간다. 그 반복 속에서 윤리가 만들어진다. 타루가 말한 '성실함'은 일상에서 타인의 고통을 덜어내려는 태도이며,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다. 랑베르 역시 끝내 남기를 선택하며, '같은 배에 탄 사람들'로서 서로를 버리지 않는 최소한의 연대를 회복한다.
이 지점에서 '페스트'의 메시지는 분명해진다. 팬데믹과 기후위기, 사회적 양극화는 언제든 또 다른 '페스트'로 반복될 수 있다.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위기 자체가 아니라, 사실을 외면하는 태도와 불신, 그리고 '나는 예외일 것'이라는 착각이다. 반대로 공동체를 지키는 힘은 정확한 정보와 소통,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감당하는 작은 책임에서 나온다. 부조리는 피할 수 없지만, 그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될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그 선택이 우리의 세계를 덜 잔혹하게 만드는 가장 조용한 희망일 것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