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산북면 깊은 산자락에 자리한 대승사 전경. 전통 한옥 양식의 전각들이 층층이 배치된 가운데, 고요한 산세와 어우러져 수행 도량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강남진기자>
경북 문경 산북면의 한적한 산길.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날 만큼 좁은 길을 따라 굽이굽이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깊은 산자락에 조용히 자리 잡은 대승사다. 화려함보다는 고요함으로 기억되는 이 산사는, 오랜 시간 지역의 삶과 함께 숨 쉬어온 '우리 동네 문화유산'이다.
대승사로 향하는 길은 초입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문경 시내를 벗어나 산북면으로 접어들자 차량과 사람의 흐름이 눈에 띄게 줄었고, 대신 숲이 시야를 채우기 시작했다. 길은 점점 좁아졌고, 휴대전화 신호마저 불안정해졌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오히려 이곳이 간직한 시간의 깊이를 예고하는 듯했다.
사찰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소리의 부재'였다. 관광객의 웅성거림 대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그리고 간헐적으로 울리는 목탁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도시에서 흔히 접하는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롯이 자연의 리듬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승사의 경내는 크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전각들은 자연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배치돼 있으며, 오래된 목조건축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법당과 요사채, 마당은 서로를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수행과 일상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형성된 풍경이다.
문경 대승사 경내 백화당 전경. 전통 한옥 양식의 단정한 건물과 기와지붕이 조화를 이루고, 중앙 계단 너머로 법당이 이어지며 산사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강남진기자>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보존된 형태'보다 '이어지는 가치'에 있다. 대승사는 특정 시대의 유산으로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지금도 수행과 생활이 이어지고 있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오래전부터 기도와 쉼의 공간으로 자리해 왔고, 외지 방문객에게는 조용히 머물 수 있는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사찰 주변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자연과 공간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산은 사찰을 감싸듯 둘러서 있고, 계절의 변화는 그대로 풍경이 된다. 봄에는 산벚과 들꽃이 경내를 물들이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계곡의 물소리가 어우러진다. 가을이면 단풍이 전각을 감싸고, 겨울에는 눈 덮인 산사가 깊은 정적을 만들어낸다. 대승사의 진가는 이처럼 시간과 계절 속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접근성은 다소 불편하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함창IC에서 문경 시내를 거쳐 산북면 방향으로 이동하면 되지만, 마지막 산길 구간은 도로 폭이 좁고 경사가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점촌터미널에서 산북면 방면 버스를 이용한 뒤 마을버스나 택시를 추가로 이용해야 한다. 이 같은 불편함은 대승사의 고요를 지켜주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방문 시에는 기본적인 예절이 요구된다. 수행 공간인 만큼 큰 소리를 내거나 무분별한 촬영은 자제해야 하며, 자연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른 오전이나 해질 무렵, 사람의 발길이 뜸한 시간대에 찾으면 산사의 분위기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다.
문경에는 문경새재와 같은 대표 관광지가 있다.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지역의 활기를 상징한다면, 대승사는 그 이면에서 조용히 지역의 시간을 지켜온 공간이다. 눈에 띄지 않지만,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의 삶과 함께해 온 유산. 그것이 바로 대승사의 가치다. 산길을 내려오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들어올 때와 같은 길이었지만, 마음의 무게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대승사는 그렇게, 말없이 사람을 바꾸는 공간이었다.
문경 대승사 법당에 봉안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중앙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보살과 제자상이 빼곡히 배치된 목조 군상으로, 정교한 조각과 화려한 금빛 장엄이 어우러져 극락세계의 설법 장면을 형상화하고 있다. <강남진기자>
강남진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