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수저에 부침

  • 김보미 작곡가·예술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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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30 11:48  |  발행일 2026-03-31
김보미 작곡가·예술기획자

김보미 작곡가·예술기획자

오랜만에 김해에 있는 부모님 댁에 왔다. 엄마는 새단장 중인 집에 두려고 옛 수저통을 꺼냈다. 동생이 어릴 때 쓰던 아기 수저부터, 언젠가 아빠가 쓰던 은수저, 선물받은 건지 산 건지 모르겠지만 요즘 스타일과는 다른 두툼한 몸체에 버섯, 구름, 사슴, 산이 그려진 수저 세트들도 함께 나왔다. 어릴 적 이사 갔을 때 가족 네 명이 각자 마음에 드는 무늬를 골라 흔치 않게 모두 다른 수저를 쓰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나는 빈티지를 좋아한다. 옛 물건들은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릴 때는 촌스럽게 보이던 것이 지금은 고풍스럽게 느껴지고, 그때는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낡아지면서 오히려 더 값진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 그런 물건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수'(壽)와 '복'(福)이 적히고 십장생이 그려진 수저들을 보며, 예부터 누군가는 사용하는 사람의 건강과 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의미를 새겼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 순간 수저는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이야기를 품은 물건처럼 느껴졌다. 비녀로 바꿔볼까, 책갈피로 만들어볼까 생각하다가 밥 먹으라는 엄마의 소리를 듣고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내가 아끼는 1900년대 반지 중에는 스푼링이 있다. 유럽에서는 하인들이 결혼할 때 모시던 귀족 가문의 은 숟가락을 구부려 반지로 만들어 사랑의 증표로 사용했다고 한다. 숟가락 끝이었을 부분은 어떤 것은 화려하고, 어떤 것은 고풍스럽다. 그 안에는 분명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을 것 같아, 그 반지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오래된 것들은 그 자리를 오랜 시간 지켜온 나름의 다정함을 가지고 있다. 빈티지나 Y2K, 그리고 최근에는 2016코어까지, 지나간 것들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는다. 늘 생각하지만 그 이유는 어쩌면 지금의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오랜 시간을 버텨온 것들이 마치 동아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안에 담긴 추억과 감정은 지금 막 만들어지는 것들과는 조금 다른 온도를 가지고 있다. 낯설기보다는 익숙하고, 가볍기보다는 안정적이다. 그래서인지 무언가를 기획하거나 곡을 쓸 때도 자연스럽게 감정을 담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오래 남는 것들은 결국 그런 결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클래식이나 국악처럼 오랜 시간을 지나온 음악들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도 비슷한 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수저에 부침'이라고 붙였다. 달에 부침, 음악에 부침 같은 옛 가곡의 이름처럼, 수저를 보며 떠오른 생각을 수저에게 전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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