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절판본’의 시대는 온다 ①

  • 이창수 유락·야행성동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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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31 10:42  |  수정 2026-04-01 10:43  |  발행일 2026-04-01
이창수 유락·야행성동물 대표

이창수 유락·야행성동물 대표

고백하자면, 나는 이 글을 AI로 썼다.


사실 지난 칼럼들 모두 그랬다. 챗GPT와 유료 버전 구글 제미나이를 번갈아 썼는데, 아이디어 몇 줄 던져주고 10분쯤 '딸깍딸깍' 하니 자판기 커피 뽑듯 그럴듯한 칼럼이 뚝딱 나왔다. 하지만 이대로 담당 기자에게 넘기면 바보일 터. 이쪽 AI의 글을 저쪽 AI에게 주며 "사람이 쓴 것처럼 다시 써" 명령하고, 이리저리 핑퐁 치며 손질해 완성한 것이 지난 결과물들이다.


거짓말이다. 칼럼들은 하나의 글감을 쥐고 창작의 고통 속에서 한땀 한땀 길어 올린 내 지성과 육체노동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 해명조차 거짓말일지 모른다. 당신은 여전히 의심스러울 것이다. '의심'이란 살아있는 생물 같아서 한번 싹트면 쉽게 지워지지 않으니까. 과연 눈앞의 이 문장들은 기계의 것일까, 사람의 것일까?


최근 출판계 화두가 바로 이것이다. 시작은 한 해 9천권의 책을 쏟아낸 소형 출판사가 언론에 포착되면서였다. 대형 출판사 한 곳이 연간 200권쯤 만드는 것과 비교하면 무려 45배나 많은 수치다. 당연히 기계의 힘을 빌린 결과이고, '딸깍' 한 번에 칼럼 한 편을 넘어 책 수천 권이 나오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 나온 책들을 볼 때면 의심부터 앞선다. '어디까지가 사람 생각일까' '며칠 만에 뚝딱 만든 결과물 아닐까?' 하고. 칼럼도 기사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세상 만물이 AI 위에서 돌아간다지만, 기계가 쓴 글에 밑줄까지 쳐가며 '아하!' 하는 나를 상상하면 어쩐지 바보가 된 것 같아 분하고 억울해진다.


독립서점 '야행성동물'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절판본을 전문으로 취급하게 된 배경이다. 20~30년 전 절판본은 오직 작가의 경험과 지성, 육체에서 밀어 올려진 것들이기에 그런 얄팍한 의심이 끼어들 공간 자체가 없다. 낡은 종이와 잉크의 물성,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소멸과 맞닿는 감각. 이 모든 게 뒤섞여 활자로 전해지는 희열과 감탄이 절판본에는 있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런 문장을 과연 AI가 쓸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호함 속에서 실시간으로 우리 사회와 나에게서 무언가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루키'를 택한 건 일종의 장치였을 뿐, 이 공간에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인간의 육체에서 쥐어짜낸 진실된 무엇, 하루하루 상실되는 그것들을 생각해보자는 것. 뭐, 어리석은 시대 역행처럼 보인다면 어쩔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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