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윤자 시민기자
어릴 적 봄은 아이들의 발자국에서부터 깨어났다. 시골에서 자란 필자는 이맘때면 동네 언니들을 따라 쑥을 캐러 다녔다. 작은 바구니와 과도를 들고 논두렁과 밭 언덕을 오르내렸다. 언니들은 쑥을 잘 찾아냈다. 그 곁에서 비슷하게 생긴 풀을 뽑았다가 그건 아니라며 핀잔을 듣기도 했다. 바람 끝이 차가워도 논두렁의 흙은 봄볕을 받아 따뜻했고 쑥을 캘 때마다 풋풋한 향기가 올라왔다. 우리는 쑥을 캐는 것보다 더 많이 웃고 조잘댔지만, 어느새 바구니는 쑥으로 가득 찼다.
집으로 가져온 쑥 바구니를 마루에 펼쳐놓고 검불이나 마른 잎을 골라내며 다듬던 할머니는 '버릴 것이 더 많네' 하시면서도 대견해하며 저녁에 들깨가루를 넣고 콩가루를 묻혀 쑥국을 끓였다. 어른들은 향긋한 봄의 맛이라며 좋아했지만, 그때의 필자는 쑥을 캐며 즐거웠던 시간만큼 쑥국이 입맛을 썩 당기지는 않았다. 그냥 언니들을 따라 들판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 좋았다.
음력 2월이면 엄마는 쑥떡을 만들었다. 햇쑥이 자라기는 이른 계절이라 지난해 봄 캐다가 말려둔 쑥을 꺼냈다. 바스락거리며 부서질 듯 마른 잎을 물에 불리고 커다란 솥에서 삶아내면 쑥의 색과 향이 되살아났다. 계절이 접혀있다가 펼쳐지는 듯 겨울을 건너온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삶은 쑥과 쌀가루를 섞어 쪄내고 노란 콩가루를 입히면 떡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쑥떡을 한입 먹으면 혀끝에 닿는 것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었다. 쑥떡을 먹는 일은 겨울을 잘 견디어 왔다는 안도와 다가올 봄을 맞이하는 작은 의식 같았다.
세월이 흐르며 그런 봄날도 추억 속으로 멀어졌다.
쑥을 찾아 산책길에 나섰다. 논둑길을 걷다 보니 양지에 뽀오얀 쑥이 제법 자라 있다. 나이 든 어르신 한 분이 쑥을 캐고 있다. 슬그머니 옆에 앉아 함께 캐며 말벗이 되었다. 젊은 시절 먹을 것이 많지 않을 때는 쑥이 생활에 많은 보탬이 되었다며 쑥국도 끓여 먹고 쑥버무리도 만들어 먹었는데 먹을 것이 풍족해진 지금도 그때 먹던 맛이 그리워서 해마다 뜯는다고 했다. 이야기 속에 빠져들며 쑥을 캐다 보니 제법 봉지가 두둑해졌다. 집에 와서 다듬어서 쑥국을 끓였다. 향긋한 쑥향이 추억처럼 입안 가득 번져나갔다.
몇 해 전 봄날 한 친구 제안으로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쑥을 캐는 모임이 있다. 친구들과 함께 하니 재미있는 놀이다. 봄이 오면 이제 우리는 어릴 때처럼 들판으로 나간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며 웃는다. 예전처럼 허리가 쉽게 굽혀지지 않고 무릎도 불편하지만, 마음만은 그때의 아이처럼 가볍다. 손끝에 묻은 쑥 향기를 맡는 순간 문득 깨닫는다. 우리가 캐는 것이 쑥만이 아니라는 것을. 논두렁을 뛰어다니던 그 시절의 우리와 잊고지냈던 봄 한 자락을 캐오고 있다는 것을.
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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