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지명(地名)이 이상해요] ‘고아’ 이름에 갇힌 고아초등 학생들

  • 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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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05 21:45  |  발행일 2026-04-05
교명 고아(高牙)의 오해와 진실 두 얼굴.<AI  생성>

교명 고아(高牙)의 오해와 진실 두 얼굴.<AI 생성>

"우리가 왜 불쌍하게 보여야 하나요?"


새 학기인 매년 3월이면 경북 구미시 고아읍 고아초등학교 학부모 사이에는 때 아닌 '교명 전쟁'이 벌어진다.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고아초등학교 교명을 두고 "듣기 거북할 정도의 이상한 교명(校名)을 바꿔달라"는 얘기가 봇물처럼 터져 나와서다. 교명인 고아(高牙)가 '부모 없는 아이'를 뜻하는 고아(孤兒)와 발음이 같아서 생기는 일이다.


◆수학여행지의 오해 "애미애비 없는 녀석들"


고아초등 졸업생에게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웃지 못할 서글픈 일화가 있다. 과거 고아초 학생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떠난 수학여행지에서 생긴 일이다. 현지의 어느 식당에서 학생들이 밥을 먹던 중, 주인 아주머니가 "너희들은 어디서 왔니?"라고 물었다. 아이들은 해맑게 대답했다. "고아초등에서 왔어요." 그 순간 식당 주인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아이들이 '고아원'에서 온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주인은 혼잣말로 "에고, 애미애비도 없는 불쌍한 것들"이라고 하면서 주방으로 달려가 밥과 고기 반찬을 식탁에 수북이 쌓아줬다는 것이다. 당시 아이들은 배불리 먹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교명 때문에 졸지에 '고아원 출신의 불쌍한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평범하지 않은 교명에 애 타는 부모


지난달 입학한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아이가 입학하기 전부터 '너 고아 아니니?'라는 놀림을 받을까 걱정이 컸다"며 "아이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에 잘못된 사회적 편견을 아이들에게 갖게 하는 것이 맞느냐"라고 하소연했다. 5학년 자녀를 둔 다른 학부모는 "명절에 사촌들을 만날 때마다 학교 이름으로 장난을 쳐서 너무 기분 나쁘다. 다른 학교처럼 평범한 교명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사실 과거에도 '고아' 교명의 논란은 있었다. 고아초교 인근의 고아중학교와 고아고등학교는 1996년 지역 여론과 학생들의 정서를 고려해 현일중학교와 현일고등학교로 바꿨다. 실제 부산 기장군의 '대변초등학교'는 1998년 학생들의 서명운동으로 '용암초등학교', 충북 괴산군의 '백기초등학교'는 2011년 괴산의 명산 성불산의 이름을 딴 '성불초등학교' 로 변경한 사례가 있다.


교명 고아(高牙)의 오해와 진실 두 얼굴.<AI  생성>

교명 고아(高牙)의 오해와 진실 두 얼굴.<AI 생성>

◆'높은 곳에 꽂힌 대장의 깃발'인 高牙


'고아'라는 지명에는 얽힌 옛 이야기가 있다. 옛 선산군지의 지명의 유래를 들여다보면 한자로 고아(高牙)는 높을 고(高)에 어금니 아(牙) 자를 쓴다. '아(牙)'는 치아가 아닌 옛 군대에서 대장의 장막 앞에 세우던 위엄이 깃든 깃발 '아기(牙旗)'를 의미한다. 고아읍은 '높은 곳에 대장의 깃발을 꽂은 아성(牙城)'이라는 뜻으로 '장군의 기상과 위엄이 서린 땅'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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