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
근래 우리나라의 객관적 위상을 보여주는 몇 개의 중요한 보도가 이어졌다. 반가운 뉴스도 있었지만 우울한 내용도 있었다.
# 우리 사회의 엇갈리는 지표들
가장 반가운 뉴스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1년 전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는 뉴스였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교 산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지난달 16일, 전 세계 17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민주주의 보고서 2026'에서였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순위는 2024년 세계 41위에서 2025년에는 22위로 19계단이나 상승했다는 것이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후퇴하던 민주주의가 지난해 '자유민주주의 최고 등급'으로 다시 올라선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전년 대비 27계단이나 급락해 51위를 기록한 미국을 포함해 54개국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했고, 세계 평균 시민이 누리는 민주주의 수준이 1978년 수준으로 크게 떨어진 가운데 거둔 성과였다는 사실이다.
그 못지않게 반가운 뉴스는 지난 2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2026년 세계 강대국(Global Power) 순위'였다. 우리나라가 1년 전과 비교해 1계단 상승해 세계 6위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일본(8위)과 프랑스(7위)까지 제친 결과여서 더 반가웠고, 국가의 경제 규모, 군사력, 기술혁신 역량, 외교적 영향력, 문화적 파급력 등을 종합해 산출한 결과여서 더 고무적이기도 했다.
하나만 더 들어본다. 우리나라의 '유엔 AI 허브' 유치가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보도였다. 지난 달, 김민석 총리가 미국을 거쳐 스위스 제네바로 가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보건기구(WHO), 국제노동기구(ILO)를 비롯한 6개의 주요 유엔 기구들과 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는 것이다. AI 시대의 새로운 사회시스템과 국제 규범을 세워야 하는 중요한 분기점에서 우리나라가 이미 글로벌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두 12·3 내란 후의 극심한 혼란을 이기고 거둔 성과들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다른 빛깔의 성적표도 받아들게 됐고 이내 착잡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유엔이 '세계 행복의 날'로 정한 3월20일,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갤럽, 옥스퍼드 웰빙연구센터와 함께 발간한 '세계 행복보고서'였다. 조사 대상 국민이 느끼는 행복도를 물어 직전 3개년 평균치로 각국의 행복지수를 산출해 발표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나라는 10점 만점에 6.040점으로 세계 67위를 기록했다. 일본(61위)은 물론 중국(65위)보다도 낮은 점수였다. 2025년 58위에서 9계단이나 하락한 순위이자 위 조사가 처음 발표된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순위기도 했다. 윤석열정부 출범 후의 민주주의 후퇴와 12·3 내란 이후의 극심한 사회 혼란 및 경제침체 등이 행복지수 하락의 주요인이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부끄러운 기록들로도 뒷받침된다. 20년 넘게 OECD 1위를 기록해온 자살률, 10년 넘게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었다는 사실, 역시 OECD 1위인 노인빈곤율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 등이 그것이다.
요약하면 우리는 어느덧 잘사는 민주주의 선진국이 됐지만, 국민은 그 성과를 온전히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글로벌 강국으로 올라섰지만 적지 않은 국민은 실패, 좌절 그리고 일상화된 피로와 우울, 불안, 분노에 지쳐 있는 것이다. 청소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행복하지 않다는 느낌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국내외의 사회과학자들도 관심 갖고 다양한 분석과 진단을 내놓았다. 구미 선진국들이 200년 넘는 기간에 이룩한 성과들을 불과 반세기 만에 달성한 '압축성장'의 부작용으로 설명하거나, 압축성장의 수단으로 채택한 불균형 성장 전략과 신자유주의 극한경쟁의 폐해로 분석하기도 한다. 정글 자본주의 시스템이 사회구성원의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며 시민적 덕성을 타락시킨 탓으로, 혹은 협력과 정의를 우선해야 할 학교, 언론, 종교 등까지 물신주의와 약육강식의 시장논리에 장악된 결과로 진단하기도 한다. 가족과 마을공동체가 무너지면서 구멍 뚫린 안전망을 복지 체계가 메우지 못하고 있는 것, 우리 사회에 팽배한 혐오와 차별, 여전히 준동하고 있는 내란세력과 극우 집단 등에 주목한 이도 있다.
# 국가 목표 재설정, 이젠 결단해야
중요한 것은 그동안 후유증이라 생각하고 감내해온 부정적 결과들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정도로 무거운 족쇄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결단해야 한다.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를 만들겠다는 결단이다. 핵심은 '약육강식∙승자독식의 극한경쟁 체제에서 벗어나 협력∙연대의 상생 체제로' 사회의 골격을 재구축하는 것이다. '저신뢰의 초격차∙갈등사회에서 공공선과 공정에 기초한 신뢰∙연대사회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이미 망국병이 돼버린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극심한 불균형을 극복하고 균형발전 사회로', '자산∙소득의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함께 사는 사회로', '각자도생의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절제와 포용의 공화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행복'을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책무로 재설정하고 국가운영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도 '전문'에서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선언하고 있고, 10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하고 있다. 국가 운영자들은 물론, 정치권의 여야 지도자들, 지금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도 그것의 의미를 깊이 인식하고 명심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결단도 필요하다. 행복은 삶에 대한 개인의 태도로부터도 크게 영향받기 때문이다. 살면서 중요하게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오랜 시간 익숙했던 '양과 속도를 좇는 삶에서 질과 방향을 중시하는 삶으로' 돌려세워야 한다. 행복지수 세계 1위의 핀란드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두드러지게 다른 것이 이타적인 행동과 타인에 대한 높은 신뢰도라는 사실이 주는 교훈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행복한 삶, 행복한 사회를 위해 삶과 사회에 대한 관점을 바꿔내는 의식혁명, 생활혁명에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스케치] 대선 후보 출마 방불케한 김부겸 대구시장 출마 기자회견…대구서는 TK 출마자 챙겨](https://www.yeongnam.com/mnt/webdata/content/202603/5_26.03_.30_김부겸_대구시장_출마선언_썸네일_출력본_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