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 유락·야행성동물 대표
먼저 나는 도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하지만 독립서점 '야행성동물'을 여는 일은 분명한 도박이었다.
"여기, 열람용만 있나요? 살 수 있는 책은 없나요?" "죄송…" 서점을 차렸지만 어떤 책을 들일지 고민이 깊었다. 인테리어에 예산을 거의 탕진한 상황. 어찌나 고민이 깊었던지 한 달 넘게(!) 판매용 책 없이 공간만 열어뒀을 정도였다(내 책을 놔두고 '준비 중'이라 얼버무리며 버텼다).
수많은 시뮬레이션 끝에 나온 키워드는 '하루키'. 정확하게는 '하루키 절판본'이었다. 일주일 굶고 짜장면 본 사람처럼 절판본을 마구 사 모았고, 그렇게 지금의 야행성동물이 탄생했다.
내 '감'에 의하면 절판본의 시대는 온다. 소비자는 늘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찾지만, 마냥 새롭다고 지갑을 열진 않는다. '있어 보여야' 한다. '텍스트 힙'이니 '포엣 코어'니 하는 것이나 무선 이어폰 대신 굳이 '줄 이어폰'을 찾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있어 보인다는 건 다시 말해 '희귀'하다는 것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 못하는 것을 뜻한다. 서점에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책이 과연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을까? 그러니 이 흐름이 궁극적으로 몰릴 종착지는 '절판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자 베팅의 근거다.
가격도 중요하다. 두쫀쿠? 1만원 안팎의 비싸면서도 싼 가격이 한몫했다. 단언컨대, 그 이상이었다면 결코 인기가 없었을 것이다. '고물가 시대, 나를 위한 최소한의 사치'. 그것이 지금 시대 트렌드를 이끄는 힘이고, '러닝'이나 '텍스트 힙', '다꾸' 모두 이런 배경과 멀지 않다. 그런 면에서 하루키는 더할 나위 없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 데다, 작품에 깔린 '상실'이란 주제는 지금의 나를 대변하는 듯하다. 적당한 가격에, 적당히 구하기 어렵고, 어쩐지 있어 보이기까지 하는 희귀템! 그것이 바로 '하루키 절판본'인 것이다.
사실 이런 도박이 처음은 아니다. 2년 전 유락을 열 때 "We don't like algorithm!"을 외치며 카세트 테이프를 전면에 내세웠다.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테이프를 사 모았고, 대여해주는 시스템까지 마련했다. 그러고 "카세트의 시대는 온다!"고 외쳐댔지만 아쉽게도 아직 별 기미는 없다.
그래도 '어드민 나이트'의 유행은 맞췄으니 이쪽으로 아예 소질이 없는 건 아닐 테다. 카세트까진 몰라도 절판본의 시대는 온다. 반드시. 이상, 매일 밤 물 떠놓고 '절판본…절판본…' 기도하는 서점 주인의 허술한 일장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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