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비 온다니 꽃 지겠다

  • 이상학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기획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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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08 18:46  |  발행일 2026-04-09
이상학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기획홍보팀장

이상학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기획홍보팀장

'비 온다니 꽃 지겠다 // 진종일 마루에 앉아 /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박준 시인이 쓴 '일기예보' 전문이다. 며칠을 두고 봄비가 오더니 이내 벚꽃이 다 졌다. 조금만 더 두고 보았다면 좋았으련만, 야속하기도 하다. 하지만 자연은 무심히도 어김없다. 어김없이 봄은 찾아오고, 꽃이 핀다. 봄비가 내리고, 다시 꽃이 진다. 그리고 여름을 향한다. 봄날의 순간들을 두고두고 붙잡고 싶었던 마음들에 아랑곳없이 자연은 다음을 준비한다.


비가 그치고 해가 진 거리는 꽃비로 환하다. 바람이 가지를 흔들 때마다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벚꽃들은 속절없이 아름답다. 찰나 같았던,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벚꽃들의 낙화는 처연한 장관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생에도 봄날 같았던 순간들이 있었음이 떠오른다. 봄꽃 같았던 사랑, 그리고 낙화 같았던 이별. 인생의 봄날들이 저 낙화에 겹쳐진다. 이렇게 또 생의 한순간과 이별한다.


하지만 정작 저 꽃잎들은 이별을 알지 못한다. 자신들의 마지막을 아쉬워하며 떠나보내는 우리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떠나갈 때가 되어 떠나갔을 뿐. 모든 떠나는 존재는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다. 남겨진 존재만이 그 뒷모습을 볼 수 있다. 마지막을 목격하고 기록하며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남겨진 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 된다. 낙화를 기록하듯, 이별이 기억하듯.


하지만 그 특권은 고통을 수반한다. '있었던' 존재가 어느 순간, '없었던'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 이별은 곧 상실이다. 우리 몸은 상실을 위험으로 인식한다. 신경계가 자극을 받게 되고 그 자극은 때로 신체의 고통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별은 곧 고통이다. 때로 이 고통은 나의 정체성까지 흔들게 된다. 이별은 관계의 단절이다. 관계란 결국 우리의 정체성을 지탱해 주는 세계이기도 하다. 부모와 자식, 연인과 친구, 내 것이라고 불렀던 모든 것들은 모두 나를 설명해 주고 규정지어 주는 존재들이다. 이 존재들이 나를 떠날 때마다 나의 존재에 대한 증명도 소실된다. 이별은 그 대상만 잃는 것이 아니다. 이별은 나를 잃는 것이다.


그래서 이별의 과정은 고통을 수용하고, 극복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벚꽃이 다 떨어졌다고 해서 벚나무의 생은 끝난 것이 아니다. 꽃잎이 떨어져 나간 자리마다 잎을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 이별을 딛고 계속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한다. 결국 이별은 성장이다.


떠나간 꽃자리마다 새로이 잎이 돋고 있다. 그러고 보니 작년보다 한 치는 더 자랐다. 우리도 더,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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