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의 시와함께] 구윤재 ‘인공호수 걷기’

  • 신용목 시인
  • |
  • 입력 2026-05-04 09:15  |  발행일 2026-05-04
신용목 시인

신용목 시인

화를 내는 저 사람과


말을 두고 사라진 너 사이에


아무런 접점이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고개를 파묻은 사람의 표정을


내가 흉내 낼 수 없듯이


호수를 따라 난 길은


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이 불고


육교 아래를 지나며


어떤 상쾌함을 느끼는 것


얼어붙은 호수 밑의 물고기가


죽지 않았다는 걸 이제 나는 안다


공원을 빠져나오며


서 있는 사람이 주저앉은 한 사람의 어깨를


계속해서 쓸어내리는 것을 보았다


이해했다



인간이라는 절망을 각자가 다르게 느끼는 시간이 있고, 각자의 절망을 인간으로서 함께 느끼는 시간이 있다. 이해한다. 우리가 같지 않다는 것. 우리를 나눌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불가능하다는 것. 오직 어긋남을 통해서만 우리는 만난다. 오직 상처를 통해서만 우리는 말한다. 그것이 고통이고 슬픔이며 드디어 사랑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결별은 괜찮다. 결별의 이유가 문제일 뿐. 우리는 그 이유 때문에 주저앉는다. 망각은 괜찮다. 망각의 증거가 문제일 뿐. 우리는 그 증거 때문에 여기 있다. 서로를 버린 이유로 '우리'가 있고 서로에게 버려진 증거로 '우리'가 있다. 이해했다. 우리가 같다는 것. 그 이유와 증거의 시간이 인간을 통과하기 위해 육교 아래로 바람이 불고 우리가 바람을 느낀다는 것.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생활/문화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