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 영화평론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리고'가 또 한 번 K-시리즈 열풍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달 24일에 공개된 이 8부작 공포물은 공개 2주차에 글로벌 TOP 10 비영어권 시청시간 1위를 차지했고, 총 24개국에서 1위, 64개국에서 TOP10을 차지하는 등 주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살목지'(감독 이상민)가 3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 오컬트 시리즈까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 한국 공포물의 저변확대를 기대하게 한다. 저예산 영화임에도 장르적 재미를 극대화시킴으로써 큰 성과를 거둔 '살목지'처럼 '기리고' 또한 참신하고 과감한 기획으로 저예산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청자들의 욕구를 공략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시리즈의 제목이기도 한 '기리고'는 자신의 이름과 사주를 쓰고 소원을 빌면 무엇이든 이루어준다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첫 번째 희생자인 '형욱'(이효제)은 장난삼아 기리고에 전국학력평가 수학영역에서 1등을 하게 해달라고 비는데, 놀랍게도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가 몰랐던 사실은 소원이 이루어지면 24시간 후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 시리즈의 첫 번째 법칙이 성립된다. 대부분의 애플리케이션이 결제를 요구하는 것처럼 기리고는 목숨을 요구하는 것이다. 기리고가 장난처럼 빈 소원의 대가라기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이유는 몇 년 전, 세상을 증오하게 된 한 소녀(도혜령)가 저주를 걸었기 때문이다. 시리즈의 한 회차를 할애해 등장하는 기리고 개발자 '권시원'(최주은)과 도혜령(김시아)의 이야기는 '기리고'의 세계관 속에서 설득력 있게 펼쳐지며, 현실의 공포와 판타지의 공포를 꽤 단단히 접합시킨다.
시리즈의 첫 장면에서 도혜령이 그랬던 것처럼 형욱이 목을 그어 자살하는 모습을 목도한 친구들은 공포에 질리고, 기리고가 예사 어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만 이미 '나리'(강미나)와 '건우'(백선호)는 소원을 빈 후다. 이에 '세아'(전소영)는 건우를 살려내기 위해 기리고를 켜고 스스로 저주에 갇힌다. 이들의 유일한 희망은 신내림을 받아 산속에 갇혀 사는 '하준'(현우석)의 누나 '햇살'(전소니)과 그녀의 남자친구 '방울'(노재원)의 구원 뿐이다. 세아는 햇살이 지시하는 대로 원혼들의 세계로 들어가 매흉(붉은 폰)을 찾아 없애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초현실적 공간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내고, 외적 공격과 내적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세아는 흡사 VR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게이머와 유사하다.
이처럼 '기리고'는 얼핏 하이틴 호러의 공식을 따르는 듯 하지만 기저에서 서사를 지탱하는 것은 한국의 무속신앙과 현대적 불안의 결합이다. 사주를 적고 소원을 비는 형식, 매흉, 동티 등의 개념은 스마트폰, 소원 이뤄주는 어플, AI로 복제된 목소리 등과 융합되면서 동시대 관객들의 일상을 파고든다. 성적, 교우관계 등 '여고괴담' 시절부터 이어져온 십대들의 소원은 최첨단 기술을 만나 더 잔인하고 집요해졌다. 우리의 삶과 밀착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많이 의존하고 종종 집착하는 것이 우리를 배신하거나 통제를 벗어날 때 벌어질 비극에 대한 극단적 레포트인 것이다.
장점이 많은 작품이지만 '기리고'의 가장 큰 성취 중 하나는 신인 배우들의 발굴이라고 할 수 있다. 판타지적 공포를 생생하게 체화시킴으로써 거침없이 극을 이끌어간 신예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속히 다른 작품에서도 만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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