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12호인 울릉도 태하리 임오명 각석문 안내 간판. <홍준기 기자>
경북 울릉군 서면 태하리 해안 절벽 아래에는 바위 하나가 조용히 놓여 있다. 가까이 다가서지 않으면 글씨인지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흔적, 바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12호'인 울릉도 태하리 임오명 각석문이다. 사람들은 이를 '임오명 각석'이라고도 부른다.
바위 표면에 남아 있는 글씨는 대부분 마모되어 형태를 잃었고, 멀리서는 단순한 긁힘이나 자연 훼손처럼 보일 정도다. 해안 절벽 특유의 거친 환경 속에서 파도와 바람, 염분이 오랜 시간 동안 바위를 깎아내린 결과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봐야 겨우 윤곽이 드러나는데, 그마저도 명확하지 않아 "저게 글씨가 맞느냐"는 반응이 먼저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바위에는 '임오(壬午)'라는 간지가 남아 있다. 이는 1882년을 가리키는 표기로, 이 시기와 관련된 어떤 기록 행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로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이 각석은 조선 정부가 울릉도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한 검찰사 이규원의 활동과 연결되어 해석된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12호'인 울릉도 태하리 임오명 각석문. <홍준기 기자>
당시 울릉도에는 일본인의 무단 벌목과 왕래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고, 조선은 섬의 실태를 확인하고 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비문을 둘러싼 해석은 여전히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누가 정확히 어떤 목적에서 새겼는지에 대해서는 학술적으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작은 흔적이 울릉도라는 섬 공간에 누군가의 이동과 체류, 그리고 당시 행정적 관심이 닿았던 순간을 증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태하리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도 이 바위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지역 주민 김상규 씨(64)는 "어릴 때부터 바위에 글씨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냥 오래된 건 줄 알았지 문화재인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이처럼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일상의 풍경으로 존재했지만, 그 의미는 비교적 최근에야 역사적 가치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태하리 해안은 원래 바다와 숲이 번갈아 나타나는 경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관광객들은 주로 전망 좋은 곳만 스쳐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흔적들이 남아 있다.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궁금증을 남긴다. "누가 이곳까지 와서 무엇을 남겼을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12호'인 울릉도 태하리 임오명 각석문. <홍준기 기자>
이 지점에서 임오명 각석은 단순한 바위 글씨를 넘어선다.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남겨진 작은 기록은, 그 자체로 이동과 교류, 그리고 국가의 관심이 닿았던 역사적 순간을 암시한다. 화려한 기념비가 아니라, 거의 지워져 가는 흔적이라는 점이 오히려 그 시간을 더 강하게 느끼게 만든다.
현재 이 각석은 해풍과 염분에 의해 계속해서 훼손이 진행되고 있다. 김준철 서면장은 "해안 지역 특성상 훼손이 지속되고 있어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기록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현장에서 보면 보존 상태는 안정적이라고 보기 어렵고, 글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희미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 바위는 파도 소리만 들리는 해안 절벽 아래에서 조용히 버티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치는 바위일 뿐이지만, 알고 보면 그 위에는 1882년이라는 시간과 조선의 울릉도 인식,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기억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
태하리의 바닷바람 속에서 임오명 각석은 그렇게 말없이 서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지워지지도 않은 채로.
홍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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