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삶의 등급

  • 이형국 대구문인협회 시분과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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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5-10 14:12  |  수정 2026-05-11 09:57  |  발행일 2026-05-11
이형국 대구문인협회 시분과 부위원장

이형국 대구문인협회 시분과 부위원장

나의 삶은 몇 등급일까.


지금 복닥대며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중간은 될까.


살아온 발자취에 대한 평가는 또 어떠할까.


며칠 전, 책장 정리하면서 생각도 하지 않았던 문서 뭉치를 발견했다. 오래된 듯한 플라스틱 함에 아이들 성적표와 각종 상장류가 들어 있었다. 상장 종류도 다양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아이 3명이 받은 상장들이었다. 아마도 아내가 아이들 학업을 정리해 나가면서 간직해 놓았는가 보다. 그런데 뭉치 밑에서 누렇게 바랜 자그마한 문서 몇 장이 떨어졌다.


낡아 흐늘흐늘해진 단기 4292년이 찍힌 상장 하나가 방바닥에 나풀 내려앉았다. 초등학교 1학년이면 지금부터 몇 년 전인가. 서기로 바꾸면 1959년이니 66년 전이 아닌가. 웬 골동품? 나의 수준을 알려주었던 몇 개 되지 않는 기준표에서 최우수상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중학교 이후는 상을 타 본 기억이 없으니, 나에게 있어선 등급을 가장 높게 평가받았던 상장인 셈이다.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했던 여동생을 통해 아내에게 건네졌던 모양이었다. 가물거리는 기억 속의 유년 시절은 부유한 집의 도련님이었다. 그 어린 시절이 내 삶의 등급이 가장 높았던 시기이지 않았을까.


중학교 시절, 가정적 삶이나, 학교생활이나 모두 빨간불이 켜졌다. 어머니는 어린 삼 남매를 거느리고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가장이 되었다. 이 시기의 내 삶은 어린 나이였음에도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염세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공부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빚쟁이들의 고함소리와 욕설을 들으며 주먹을 움켜쥐고 벌떡 일어나곤 했다.


취업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키우며, 서민의 삶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봉급쟁이 생활은 앞뒷면이 똑같은 '손바닥 뒤집기'였다. 간절하게 노력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은 이루지 못했다. 세월은 오히려 더 옥죄어 오니 나는 오롯이 적응해 나갔다. 가족들은 물색 없이 나를 절대군주인 양 대우해 줬다.


퇴직하고 수입이 없자 아내가 가장이 되었다. 피부양자! 용돈 받는 처지로의 변화는 무척이나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이젠 삶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다. 삶의 등급이 꼭대기든 중간이든 밑바닥이든 뭣이 다르랴. 천길 벼랑을 두려워할 분들은 내가 아니다. 가진 것 없이 가난하지만, 세상에 고개 숙일 일은 없으니, 이제야 최상급의 삶을 누리고 있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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