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2025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립미술관은 79관에 이른다. 17개 광역단체와 226개의 기초단체를 합해 총 243개 자치단체 중 약 ⅓이 미술관을 이미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자치단체의 미술관 건립 열기는 대단하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에 케이블카나 출렁다리처럼 미술관이 확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젠 정말 '없어서는 안 될 미술관'이 필요한 때다. 따라서 심도 있는 준비를 통해 최소한의 규정과 절차를 통과하는 미술관 건립이 어느때 보다 중요하다. 대부분 지역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처럼 종합미술관을 지향하며, 지역 미술사의 집대성을 표방한다. 광역이 아닌 기초단체의 경우 자원과 예산부족, 그리고 이미 운영 중인 인근 미술관이 좋은 작품을 선점해 '같은 미술관'조차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전략이다.
21세기 이후 개관해 성공한 미술관은 대부분 남다른 주제와 시대, 경향, 지역의 미술로 승부해 성공했다.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미술관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처럼 종합미술관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대·장르별 특화할 방법이 없다면 미술관 건립 계획은 철회하는 것이 낫다.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예천의 경북도립과 대구미술관 역시 차별화할 수 없다면 건립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 지자체의 미술관 건립 계획은 여전히 '똑같은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다. 최근 예산타당성 조사(예타)나 중앙투자심사(중투심)에서 탈락한 지역미술관 대부분은 정부의 까다로운 기준을 탓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전문성 없는 일반 민간연구용역기관이나 단체에 발주해 '특별'할 것 없는 미술관을 위한 보고서, 예타나 중투심에 제출하는 토목·건축 엔지니어링 중심의 자료가 원인이다. 물론 20여 년 넘도록 물가상승률이나 건축비 상승을 무시한 변함없는 '300억~500억 원 이상'이라는 기준과 문화예술기관의 특성을 고려치 않는 제도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심사에서 중요한 것은 예산 대비효과, 손익분기점(BEP)에 따른 운영 지속 가능성과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남다른 것을 통해, 누구를 위해'라는 것이다. 심의 통과를 위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곳에만 있는 'ONE & ONLY' 전략과 함께 양과 규모가 아닌, 독창적인 시선으로 엄선된 상징적인 콘텐츠, 즉 소장품 정책은 필수적이다. 정량적 평가도 중요하지만, 정성적 측면의 계량화는 더욱 중요하다. 아울러 비용을 줄이고 수익 모델의 다각화, 설립 이후 기증 작품의 계량화 등 자산의 증가와 사회적 편익(B/C)을 연계하는 논리도 필요하다. 즉, '문화예술적 가치+정책적 정당성+재정·운영 지속성'을 동시에 입증할 전략이 핵심이다. 이때 일반 공무원들이 행정의 이름으로 간섭하는 것은 금물이다.
유명 예술가에게 '개성'이 중요하듯 미술관도 자기만의 '개성'이 필수다. 따라서 미술관 건립 초기부터 경험 많은 진정한 문화예술 경영 및 정책 전문가, 전문 컨설팅 기업의 참여가 필요하다. 문화선진국의 경우 미술관, 공연장 건립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절차와 과정을 전적으로 문화예술전문컨설팅회사에 위임하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런 과정과 절차를 거칠 때 지역미술관은 '똑같은 미술관'의 함정에서 벗어나, 지역 소멸을 막고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는 진정한 문화적 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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