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성류굴 은 앞에는 왕피천과 매화천이 흐르고 성류산아래 풍경모습<원형래기자>
경북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왕피천의 맑은 물줄기와 동해의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이곳에는 수억 년의 자연과 천년의 역사를 품은 신비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 제155호인 성류굴이다.
설유굴 입장하기전 심현용박사와 장상묵 운영팀장이 사전 설명하는 모습.<원형래기자>
기자는 최근 장상묵 성류굴운영팀장과 심현용 박사의 안내를 받아 성류굴 내부를 직접 둘러봤다. 동굴 입구에 들어서자 한여름에도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고, 조명 아래 드러난 종유석과 석주는 오랜 세월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처럼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성류굴은 약 2억5천만 년 전에 형성된 석회암 동굴로 총 길이는 약 870m에 이른다. 내부에는 종유석과 석순, 석주, 석화 등 다양한 생성물이 발달해 있으며 국내에서도 드문 수평형 동굴로 알려져 있다.
장상묵 성류굴 운영팀장이 본지와 인터뷰 모습.<원형래기자>
장상묵 팀장은 "일반적인 동굴은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구조가 많지만 성류굴은 비교적 평탄하게 옆으로 길게 형성돼 있어 관람이 편리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성류굴은 예로부터 동해안 최고의 명승으로 불려왔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은 「동유기」에서 성류굴의 비경을 기록했고, 조선시대 김시습은 시문을 통해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겸재 정선 역시 성류굴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러나 성류굴의 진정한 가치는 아름다운 풍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 학계에서는 성류굴을 신라시대 국가적 수련장이자 역사문화 공간으로 주목하고 있다.
성유굴 입구 암석에 비문 모습.<원형래기자>
성유굴 입구에 비문을 탁본으로 한 명문.<원형래기자>
지난 2015년 성류굴 입구 암벽에서 삼국시대 신라 명문이 발견된 데 이어, 이후 조사 과정에서 동굴 내부 곳곳에서 수많은 명문과 각석이 확인됐다.
심현용 울진군 학예사는 성유굴 입구 비문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원형래기자>
심현용 박사는 "현재까지 약 300건 정도를 분석했지만 실제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글자가 남아 있다"며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서기 524년으로 울진 봉평신라비와 같은 시기"라고 설명했다.
특히 봉평신라비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글자 형태가 성류굴에서도 발견되면서 두 유적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성류굴 명문에는 화랑과 선인, 일반 백성뿐 아니라 병부 관계자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심 박사는 "『삼국사기』에는 화랑들이 명산과 계곡을 찾아 수련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성류굴 역시 담력과 정신 수양, 명상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현재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제11·12광장은 깊고 웅장한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동굴 깊숙한 곳에서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불상 모양의 석주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심 박사는 "직접 들어가 보면 왜 신라인들이 이곳을 특별한 공간으로 여겼는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성류굴은 역사뿐 아니라 생태적으로도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왕피천과 매화천이 만나는 수계의 영향을 받는 성류굴은 집중호우나 장마철이면 동굴 내부로 물이 유입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많은 비가 내릴 경우 안전을 위해 관람이 일시 중단되기도 한다.
장상묵 팀장은 "성류굴 안에는 잉어와 붕어, 뱀장어를 비롯해 각종 갑각류가 자연적으로 유입돼 살아가고 있다"며 "단순한 동굴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태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성류굴을 찾는 관광객도 다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성류굴 방문객은 약 25만 명으로 집계됐다. 한때 전국 초·중·고등학교 수학여행의 대표 코스로 연간 수백만 명이 찾았지만 관광 형태 변화로 방문객이 감소했다. 그러나 최근 자연과 힐링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성유굴 6광장 내부모습촬영.<원형래기자>
울진군은 성류굴의 미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사업도 추진 중이다.
총사업비 40억 원을 투입해 연면적 480㎡ 규모의 탐방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탐방센터에는 홍보전시관과 안전교육장, 편의시설 등이 들어서며 오는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와 함께 2024년부터 2027년까지 총 8억 원을 투입해 성류굴 명문 전수조사를 진행 중이다.
장상묵 팀장은 "성류굴은 자연과 역사, 문화가 함께 살아 있는 울진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품 동굴 관광지로 육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집중호우 등으로 왕피천 수위가 상승하면 일부 물이 성류굴 내부로 유입되는 경우가 있고 이 과정에서 물고기나 다양한 수생생물들이 함께 들어와 동굴 안에서 서식하는 모습도 관찰되고 있습니다.
장상묵 팀장은 "성류굴은 단순히 돌과 종유석만 있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가 함께 살아 숨 쉬는 공간"이라며 "외부 환경과 연결된 생태적 특성을 갖고 있어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또 "성류굴 내부의 자연환경과 생태계 보존을 위해 지속적인 관찰과 관리에 힘쓰고 있다"며 "앞으로도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줄 수 있도록 보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가족과 함께 성류굴을 찾은 대구의 관광객 김모(54) 씨는 "사진으로만 보다가 직접 와보니 생각보다 훨씬 웅장하고 신비롭다"며 "아이들과 함께 역사 공부도 하고 자연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어 뜻깊은 여행이 됐다"고 말했다.
왕피천과 연결된 성류굴의 독특한 수계 시스템은 다양한 동굴 생물상의 보고이지만, 동시에 기후변화로 인한 잦은 침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최근 극한 호우가 잦아지면서 동굴 내부 생태계 교란 및 종유석 등 생성물 훼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2027년 완공 예정인 탐방센터 건립 시, 단순한 관람 편의시설을 넘어 동굴 미기후 변화와 수위 변동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스마트 생태 관리 시스템' 도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억 년 자연의 시간과 천년의 역사가 공존하는 성류굴. 오늘도 그곳에는 신라인들의 발자취와 자연의 숨결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원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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