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그단새] 죽월당 수리하는 거 구경하기

  • 안도현 시인
  • |
  • 입력 2026-07-27 14:30  |  발행일 2026-07-28
안도현 시인

안도현 시인

오래된 고택을 수리하는 과정을 일년 가까이 지켜보았다. 나무를 만질 줄 아는 주인은 지은 지 400년이 넘었다는 집을 구석구석 하나씩 매만지듯이 손으로 다루었다. 그 고택은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 가까운 죽림리에 있는데, 집을 매입한 이후에 적잖이 곤란한 문제가 있었다. 이 집이 예천 권씨 권문해 선생 종택에서 '아랫종가'로 부르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초간 권문해 선생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대구부사, 통정대부 승정원 좌부승지 등을 지낸 문인이다. 1553년 부인 현풍 곽씨와 혼인했으나 후사가 없어 양자를 들였는데 죽월당은 그 양자가 살던 집이다. 권문해 선생은 곽씨와 사별한 후 1584년 함양 박씨와 혼인해 아들 권별과 두 명의 딸을 얻었다. 예천 권씨 종가에서는 종택과 상의도 없이 소유주가 집을 처분한 것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종택과 매입자 사이의 오해가 풀려 고택 수리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고택이라고 하지만 방 두 개와 대청마루, 그리고 바깥마루로 이뤄진 단출한 구조를 갖고 있는 집이다. 오래된 한옥을 보는 안목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이 고택의 튼튼한 대들보와 서까래를 보면 만만치 않은 이력을 소유한 집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기둥에는 목재를 맞춰 끼운 흔적으로 보이는 네모난 구멍이 곳곳에 나 있었다. 다른 집에 있던 목재를 재활용해서 지은 집이라는 뜻이었다. 그 재활용 방식 또한 시간이 누적된 흔적처럼 보였다.


거의 방치된 좁다란 감실을 열었더니 현판 두 개와 작은 병풍이 나왔다. '죽월당'이라는 현판을 제자리에 달기로 하고 나머지 하나는 예천박물관 수장고로 보냈다. 병풍은 도저히 수리할 수 없는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세월의 기세에 눌려 내려앉은 마루에 받침대를 세우고, 그을음이 가득한 부엌을 리모델링해 창을 다는 과정이 이어졌다. 수리 후 숙박시설로 용도를 정한 주인은 현대식 욕실과 변기를 설치하고 대청마루에 유리 통창을 달았다. 아궁이 앞 녹슨 작은 가마솥은 닦고 기름을 칠해 반질반질해졌다. 천장과 벽의 불규칙한 전선은 애자로 연결해 마무리함으로써 고택 수리는 끝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일컬어지는 '대동운부군옥'의 저자 권문해 선생이 조카를 양자로 들였다가 나중에 다시 돌려보낼 때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번듯한 집을 한 채 지어주고 토지를 조금이라도 나누어주며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지는 않았을까. 그 양자의 이름이 권현이라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죽월당에서 200m 남짓 떨어져 있는 이 종택은 국가가 지정한 보물을 석 점이나 보유하고 있는 곳. 초간이 저서를 집필할 목적으로 지었다는 초간정은 드라마 촬영지로 선택될 만큼 원림이 빼어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종택에서 초간정까지 3㎞쯤 되는, 초간이 걷던 길이 있다. 언젠가 이 길을 복원해서 누구나 걸을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


세도가라고 할 수 있는 안동 권씨에 비하면 예천 권씨 문중은 작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예천 권씨의 원래 성씨는 '흔(昕)'씨였다. 고려 충목왕의 이름과 동일해 이를 피하기 위해 외가의 성씨로 바꾸고 예천을 세거지로 정했다고 한다. 고향에 돌아와서 경북 북부지방 양반가들의 굴기와 쇠락에 대해 자주 듣는다. 과거에는 양반이 지배계급에 속했지만, 현대는 점잖고 겸손한 사람이 양반이다. 죽월당 수리하는 거 바라보면서 나는 어찌해야 양반이 되는가 생각해본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생활/문화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