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문 대구문인협회 문학단지조성추진위원장
서울역에서 고향으로 가는 열차표를 사려고 긴 줄 끝에 섰다. 발매 창구는 네 군데였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내 차례가 가까워질 무렵,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맨 앞에 선 사람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다. 앞사람은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한 걸음 비켜섰다. 뒤에 선 사람들도 말이 없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창구 앞으로 갔다.
자리를 내준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잠시 멈추었던 줄이 다시 움직였다.
승차 시간이 가까워져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승하차 표식 앞에서부터 사람들이 한 줄을 이루고 있었다. 그 끝에 서자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1950년대 중반,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전쟁 뒤라 먹을 것이 귀했다. 학교에서는 미국 원조 탈지분유를 커다란 솥에 끓여 한 컵씩 나누어 주곤 했다. 그날이면 구수한 냄새가 교실까지 흘러들었다. 키가 컸던 나는 늘 줄 맨 뒤에 섰다.
하루는 유난히 배가 고팠다. 아이들이 받아가는 우유에서는 하얀 김이 피어올랐고, 내 차례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빈 양은 컵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앞쪽 아이들의 컵이 하나씩 채워질 때마다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슬그머니 대열 중간에 끼어들었다.
"왜 새치기하느냐."
친구의 한마디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말다툼 끝에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빈 컵을 든 채 다시 맨 뒤로 돌아갔다.
앞에 선 아이들의 등이 그날따라 유난히 멀어 보였다. 아이들은 하나둘 우유를 받아갔다. 배는 더 고파졌고, 구수한 냄새는 더 짙어졌다. 그날 마신 우유의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빈 양은 컵을 들고 줄 끝에 서 있던 아이의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다. 차례라는 것을 그때 배웠다. 말이 아니라 배고픈 몸으로 배웠다.
열차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앞사람을 따라 차례로 움직였다. 내 순서가 되어 열차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낯익은 풍경들이 하나둘 스쳐갔다.
얼마 뒤 고향역에 도착했다. 출구로 향하던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다시 한 줄을 이루었다. 그 끝에 섰다.
긴 세월이 흘렀어도, 줄 끝에 서니 배고픔을 참지 못해 대열 중간으로 들어서던 어린 날이 문득 떠올랐다.
고향역의 줄이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다. 앞사람이 내디딘 한 걸음 뒤에, 나도 한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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