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농사를 포기했는지부터 살펴달라”…울릉도 농민들의 호소

  • 홍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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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18 12:15  |  수정 2026-09-18 12:45  |  발행일 2026-09-18
851.7㏊ 농지 전수조사에 긴장…“일손도, 판로도, 살 사람도 없다”
부지깽이 나물 농사도 인건비 못 건져…“누가 농지를 사줍니까”
울릉군이 대규모 농지 이용 실태조사에 들어간 가운데, 울릉읍 사동리 한 농지가 잡풀로 뒤덮여 있다. <홍준기기자>

울릉군이 대규모 농지 이용 실태조사에 들어간 가운데, 울릉읍 사동리 한 농지가 잡풀로 뒤덮여 있다. <홍준기기자>

"농사 안 짓는다고요? 그런데 누가 이 땅을 사서 농사를 짓겠습니까."


울릉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농지를 농지답게 이용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농사를 지을 사람도 줄고 애써 농사를 지어도 소득을 내기 어려운 섬의 현실은 외면한 채 경작 여부만 따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다.


18일 영남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북 울릉군이 대규모 농지 이용 실태조사에 들어가면서 농민들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이번 조사 대상 농지는 울릉읍 273.8㏊, 서면 241.5㏊, 북면 336.4㏊ 등 모두 851.7㏊다. 이 가운데 심층조사 대상은 422.7㏊로 전체의 49.6%에 달한다. 실제 경작 여부를 비롯해 불법 임대, 농지 방치, 다른 용도로의 사용 여부 등을 살펴본다.


농지 투기나 불법 임대 등을 바로잡는 것까지 문제 삼는 농민들은 많지 않다. 문제는 울릉도의 농업 현실이다. 육지처럼 넓고 평탄한 농지가 많은 것도 아니다. 경사진 밭이 적지 않은 데다 농업인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됐고, 농번기마다 일손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사람을 구하려면 높은 인건비를 감당해야 하고, 그렇게 농사를 지어도 판로가 마땅하지 않아 생산비와 인건비조차 건지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북면 주민 김규백(67) 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김씨는 그동안 부지깽이 나물을 재배해왔지만 최근에는 농사를 계속 짓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판로를 찾기도 쉽지 않은 데다, 어렵게 사람을 구해 농사를 지어도 인건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부지깽이 나물을 재배해도 이제는 판로가 문제고, 애써 농사를 지어봐야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다"며 "지금은 농사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사를 짓지 않는 농민들을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기보다 왜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지 정부가 이런 농민들의 심정을 헤아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농민들이 답답해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농사를 지을 땅은 있지만 일할 사람이 없다. 사람을 구해도 인건비가 부담스럽다. 어렵게 수확해도 제값을 받기 어렵다. 그렇다고 농지를 팔려고 해도 농사를 지을 목적으로 울릉도까지 와서 농지를 사려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서면 주민 이현화(63)씨는 "예전에는 가족들이 함께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사람이 없어 밭을 관리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며 "농지라고 해서 무조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농민은 "농사를 못 짓는다고 땅을 팔라고 하면 누구에게 팔아야 하느냐"며 "팔 사람은 있는데 살 사람이 없는 현실도 정부가 한번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조사 자체보다 조사 이후다. 농지법상 농지를 제대로 이용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 절차에 따라 처분의무나 처분명령이 내려질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수 있다. 농민들에게는 법에 따른 절차라는 설명만으로 넘기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다.


"팔려고 해도 살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임대를 하려고 해도 농사지을 사람이 없습니다." 현장에서 나오는 농민들의 말은 결국 한곳으로 모인다. 농지를 놀리고 싶어서 놀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울릉군의회 회의록에서도 고령화와 일손 부족, 경사진 농지 등 울릉도의 열악한 농업 여건은 꾸준히 문제로 거론돼 왔다. 지난 2021년 농지 이용 실태조사 이후에는 22필지에 처분 의무 통지가 이뤄진 기록도 있다. 이번 조사 대상은 851.7㏊다. 과거보다 조사 규모가 큰 만큼 농민들의 불안도 클 수밖에 없다.


울릉도의 경사진 한 농지가 고령화에 따른 농사 포기로 임야화되고 있다.  <홍준기 기자>

울릉도의 경사진 한 농지가 고령화에 따른 농사 포기로 임야화되고 있다. <홍준기 기자>

물론 농지를 제대로 이용하도록 하고 불법 임대나 투기성 농지를 바로잡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울릉도에서는 농지 이용 실태를 확인하는 것과 농업을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을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고, 농사를 지어도 소득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히 경작 여부만 놓고 농민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농지를 지키기보다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왜 농사를 짓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앞서 '왜 농사를 지을 수 없었느냐'를 묻는 일이다.


일손이 없어 밭을 놀린 것은 아닌지, 판로가 없어 수확을 포기한 것은 아닌지, 농사를 지어도 인건비조차 건지지 못해 손을 놓은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농지를 사려는 사람이나 실제 농사를 이어받을 사람이 있는지도 함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울릉도 농민들이 원하는 것은 농지 이용 원칙을 무시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도록 일손 문제를 풀고, 생산한 농산물을 팔 수 있는 판로를 만들며, 고령이나 인력 부족으로 불가피하게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농지를 관리할 수 있는 길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이번 전수조사가 단순히 '농사를 짓지 않는 땅'을 찾아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851.7㏊의 숫자 뒤에는 각각의 사정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가족과 함께 일궈온 삶의 터전이고, 누군가에게는 사람이 없어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밭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농사를 지어도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생계의 현장이다.


농민의 땅을 조사하는 일은 시작됐다. 이제 남은 것은 왜 그 땅에서 농사가 멈췄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김규백 씨의 호소처럼, 농사를 짓지 않았다는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농민들의 사정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이번 조사가 농민들에게 또 다른 부담을 안기는 행정조사가 아니라,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는 울릉 농업의 현실을 제대로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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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기

발로 뛰는 현장 취재와 심층 기획으로 울릉도와 독도의 가치를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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