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경북본사 본부장
조선시대 환관(宦官)의 세도는 대단했다. 임금의 지근거리에서 시중들던 이들이 왕의 신임을 등에 업고 권세를 부리는 일이 잦았다. 단종 3년인 1455년, 사헌부는 환관 엄자치(嚴自治) 등을 두고 "세도를 믿고 교만하며, 권세를 팔아 방자하다"고 탄핵했다. 실록 곳곳엔 환관들이 국정에 간여하고 조정을 업신여겼다는 기록이 있다. 예종 역시 즉위년, 임금 가까이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환관들이 조정을 경멸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일을 엄히 경계했다. 500년도 더 전의 이야기지만 낯설지 않다. 이른바 '완장질'이다.
완장은 본디 역할과 책임을 드러내는 표식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완장은 오래전부터 권력의 은유로 통했다. 작은 권한 하나를 손에 쥐고 그것을 자신의 능력이나 신분으로 착각해 남보다 위에 서려 할 때 우리는 흔히 "완장 찼다"라고 한다. 최근 논란 끝에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직에서 물러난 용혜인 국회의원을 보면서도 '완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퇴 전까지 보인 그의 언행을 지켜보면 장관과 국회의원직을 함께 쥐려는 '완장 욕심'에 눈이 먼 게 아니냐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용 의원의 장관 후보직 사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말이었다. 여론에 밀려 둘 가운데 하나를 내려놓아야 한다면 장관 후보직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정치적 지속성과 특권, 특혜 등을 두루 감안하면 임기가 불안정한 장관보다 국회의원 완장을 포기하기가 훨씬 어려웠을 터다. 그가 그동안 국회에서 정책의 깊이를 파고들기보다 '호통(완장질) 쇼츠'를 만드는 데 더 관심을 두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는 평가까지 겹치면 더욱 그렇다. 진중권 교수도 한 방송에서 용 의원을 비판하며 "완장 차고 민주당 의원보다 더 앞장서 민주당을 옹호하는 듯한 의정활동을 했다"라고 꼬집었다.
완장질은 정치권만의 얘기가 아니다. 회사와 행정기관에서도 어렵지 않게 마주친다. 직책 하나 맡았다고 부하 직원을 사사건건 몰아붙이고, 사소한 실수를 반복해 들춰내며,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의 능력과 인격까지 깎아내린다. 자신의 '기분(氣分)'을 어느새 조직의 '규칙'처럼 만든다. 만기친람(萬機親覽)식 간섭과 월권도 서슴지 않는다. 더 볼썽사나운 것은 '뒷배'를 권력으로 사용하는 경우다. 걸핏하면 "○○님 지시다"라고 말한다. 윗사람과의 친분을 공식 직책보다 더 큰 권한처럼 휘두른다. 전형적인 호가호위(狐假虎威)다. 이런 부류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권력을 가진 게 아니라 권력에 기대고 있을 뿐인데, 정작 자신이 권력 그 자체라도 된 듯 행동한다.
완장질이 용인되는 조직은 서서히 병든다. 직원들은 일을 잘하는 법보다 눈치 보는 법부터 익힌다. 옳은 말을 하는 사람보다 윗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능력보다 라인이 중요해지고, 소신보다 맹목적 충성이 앞선다.
사회 곳곳의 완장질을 제어할 브레이크가 절실하다. 염치(廉恥)다. 우리 사회가 염려스러운 것은 완장이 많아서가 아니다. 다수의 상식과 정서에 어긋나는 완장질을 하면서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내가 이 권한을 여기까지 써도 되는가.' '타인에 대한 잣대를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마음이 염치다. 정치인과 직장 간부의 품격도 결국 이 대목에서 평가된다. 용 의원이 장관 완장은 내려놓았지만, 국민 앞에 진정 어린 자성(自省)의 모습까지 보여줬는지는 의문이다. 뒷맛이 여전히 개운하지 않은 이유다.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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