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군 파천면 관리로 들어가면 650년을 버틴 느티나무 한 그루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운홍 기자>
경북 청송군 파천면 내관리로 들어서는 길에는 아직 산불의 상처가 남아 있다. 경북 산불이 마을을 덮친 뒤 불탄 집터는 정리됐고, 곳곳에서는 새집을 짓는 공사가 이어지고 있다. 사라진 집과 다시 세워지는 집 사이로 이 마을이 지나온 시간이 조용히 드러난다.
그 길목에 650년을 버틴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청송군 보호수 지정관리대장에 따르면 파천면 관리 406번지 내관리에 있는 이 나무는 1981년 보호수로 지정됐다. 수종은 느티나무 1본, 수령은 650년이다. 높이는 16m, 나무 둘레는 7m, 수관 직경은 23m, 지정 면적은 71㎡로 기록돼 있다.
대장에는 이 느티나무가 정자목으로 분류돼 있다. 마을 사람들이 그늘 아래 머물고, 오가며 쉬고, 때로는 마을의 일을 의논했을 나무라는 뜻이다. 지정 사유에는 수령이 오래됐고 노거수 지정 기준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나무의 재질이 견고하고 수명이 길지만 수세가 약하다는 설명도 남아 있다. 오래 산 나무이지만, 앞으로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살아 있는 문화유산인 셈이다.
산불로 마을 전체가 불에 탄 내관리, 지금은 복구를 위해 마을 정비사업이 진행되면서 임시주택이 모여 있다. <정운홍 기자>
이 보호수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최근 마을이 겪은 산불 때문이다. 경북 산불 당시 관리는 마을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다. 주민들은 대구와 안동 등지의 친척집이나 임시 거처로 흩어졌고, 일부는 고령과 건강 문제로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집과 창고, 마을 풍경이 한순간에 달라졌지만 이 느티나무는 산불 피해를 입지 않고 제자리에 남았다.
김수덕 내관리 경로회장은 "마을은 오래됐다. 옛날에는 구씨들이 살았고, 그 뒤 경주 김씨 등이 들어와 살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지금까지 살아온 주민이다. 그는 "보호수인 느티나무에 대해 특별히 전해 들은 이야기는 많지 않지만, 마을 자체의 역사는 오래됐다"고 했다.
기록 속에는 마을 공동체의 풍습도 남아 있다. 보호수 지정관리대장 연혁란에는 "매년 부락에서 정월 15일경 보름 동제를 지냄"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정월대보름 무렵 마을 사람들이 한해의 안녕과 풍년, 무탈함을 빌던 공동체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송군 파천면 관리 보호수로 저정된 느티나무. 과거 태풍으로 마을 입구쪽으로 뻗은 거대한 줄기가 떨어져 나간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정운홍 기자>
다만 주민 기억 속에서 제사의 중심에 더 선명하게 남아 있는 나무는 느티나무가 아니라 소나무다. 김 회장은 "어릴 때부터 마을 위쪽 소나무를 위해 고사를 올렸다"고 했다. 그 소나무는 느티나무에서 마을 쪽으로 10여m 위, 정자 앞쪽 길가에 있었다. 그는 "지금도 그 자리는 대략 알 수 있지만, 소나무는 불에 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 차이는 오히려 내관리의 시간을 더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행정 기록은 600년 느티나무를 보호수로 남겼고, 주민의 말은 불타 사라진 소나무를 붙잡고 있다. 한 그루는 지금도 살아 있고, 다른 한 그루는 사라졌지만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나무는 그렇게 기록과 기억을 잇는 매개가 된다.
산불 뒤 김 회장도 다시 집을 지었다. 그는 "계속 여기서 살 생각으로 조그맣게 먼저 집을 지었다"며 "아직 창고는 다 짓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아들도 마을에 머물며 복구 공사와 도로 관련 일을 챙기고 있다. 돌아오지 못한 주민도 있고, 다시 집을 짓는 주민도 있다. 안관리는 지금 폐허의 시간을 지나 다시 마을의 형태를 찾아가고 있다.
수령 650여년 된 느티나무가 파천면 내관리 입구를 웅장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 <정운홍 기자>
600년 느티나무 앞에 서면 이 마을의 과거와 현재가 함께 보인다. 오래전부터 사람이 모여 살았던 내관리의 역사, 정월대보름 무렵 마을의 안녕을 빌던 풍습, 불에 타 사라진 소나무의 기억, 그리고 산불 뒤 다시 집을 짓는 사람들의 마음이 한곳에 겹친다.
문화유산은 반드시 이름난 고택이나 화려한 유적만을 뜻하지 않는다. 청송군 파천면 관리의 보호수는 한 마을이 어떻게 버텨왔고, 무엇을 잃었으며, 다시 무엇을 세우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산불은 마을의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600년 느티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리고 그 나무 아래에서 내관리는 다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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