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타마 현에 있는 중귀련 사무소. 2차 세계대전 전범으로서 전쟁의 진실을 진술한 자료를 다양하게 모아 전시하고 있다. 외딴 곳 허름한 건물에 80대 노부부가 살면서 일주일에 3번 문을 열어 방문객을 맞고 있다. 방문객은 거의 없지만 자료만은 풍성했다.<임 원장 제공>
1945년 소련의 개입과 일본의 패전으로 만주, 시베리아에 60만명에 달하는 일본인이 남게 되었다. 그들을 분류해서 대부분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민간인 학살, 강간, 생체실험(731부대) 등 잔혹한 가해를 저지른 주범 969명은 1950년 7월 중국 푸순전범관리소로 이송되었다. 처형을 예상하며 반항하고 두려워하던 전범들에게 당시 중국 공산당 총리 주언라이는 "전범이라도 매도하거나 구타해서는 안 된다. 제네바 규정대로 포로를 대접하라"고 지시했다. 중국인들조차 제때 먹지 못하던 가난한 시절이었고 과거 많은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대부분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전범들은 매일 과거 자기가 한 일들에 대해 진술서를 썼지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전쟁의 당위성만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과분한 대접을 회유로 생각했다. 그러나 변함없는 인도적 대우, 문화·체육 활동 보장, 그리고 분노한 중국 군중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간수들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유린했던 국가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관대함 앞에서, 전범들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뼈저린 도덕적 자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저지른 전쟁 범죄를 고백하고 반성했다. 이런 진술서에 근거해서 1956년 푸순 특별군사법정에서 판결이 내려졌다. 969명 중 45명만을 기소(이들 역시 감형 후 만기 전 조기 석방)하고, 그 외 전원은 무사히 고국으로 돌려보냈다. 국제법에 근거한 결과였다. 무기징역이나 사형은 한 건도 없었다.
고국은 이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패전한 군인으로서 자결이 마땅한데 상대 국가에 세뇌되어 조국의 명예를 팔고 돌아온 배신자라는 비난이 돌아왔다. 발붙일 곳도 없었다. 그들은 '중국귀환자연락회(중귀련)'를 결성했다. 이들은 주위로부터 '스파이', '세뇌된 배신자'라는 매도와 극심한 사회적 매장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았다. 고령으로 단체가 공식 해산된 2002년까지 평생을 바쳐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증언하고 평화 운동에 앞장섰다.
중귀련은 해산되었으나 이들의 정신은 후손들과 시민사회로 이어져 사이타마현의 '중귀련 평화기념관'에 자료를 모아 두고 있다. 내가 기념관을 찾아간 날은 35도를 웃도는 날씨였다. 작은 역에 내리니 버스도 택시도 없었다. 그늘 하나 없는 시골길을 20분 걸어 도착했다. 땀이 범벅이 된 나를 80대 노부부가 맞이해 주었다. 구석구석 모아 둔 자료들은 나를 숙연하게 했다. 피해자의 대승적 용서와 보편적인 인도주의로 가해자의 진심 어린 참회를 이끌어내고 증오의 고리를 끊은 현장은 초라했지만 묵직했다.
경주 나자레원에서 일본인 할머니들이 생활하던 방. 한국인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다가 갈 곳을 잃은 일본인 여성들을 생의 마지막까지 보살핀 공간으로, 고향을 그리워한 흔적이 담긴 일본풍 장식물과 소품들이 놓여 있다.<임 원장 제공>
식민의 상처를 인류애로 품은 '경주 나자레원'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징용 간 한국인 노동자나 유학생을 만나 사랑에 빠진 일본인 여성들이 있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이들은 남편을 따라 낯선 한국 땅에 정착했다. 그러나 일본 여성이라는 이유로 극심한 멸시와 냉대 속에 살아야 했고, 전쟁과 가난의 혼란 속에서 남편을 잃거나 버림받으며 완전히 고립되었다. 일본의 가족들에게도 조선인과 결혼했다며 절연당한 처지였다.
이 할머니들을 돌본 한국 사람이 있었다. 고(故) 김용성 장로다. 막상 본인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옥사했었다. 그는 경주에 '나자레원'을 설립하고 147명의 일본 할머니가 이곳을 거쳐 일본으로 귀국하도록 돕고, 갈 곳 없는 할머니들에게 평생 이곳을 보금자리 삼아 머물도록 도왔다. 역사 왜곡과 망언을 일삼는 일본 정부를 향해 한마디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다. 식민 지배의 피해국이었던 한국의 민간인이 가해국의 동포를 포용하는 '압도적 도덕적 우위'를 보여준 것이다. 이 사실이 일본 사회에 알려지자 양심적인 일본인들은 충격과 도덕적 부끄러움을 느꼈다. 일본 전역에서 후원금과 감사의 발길이 이어졌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들은 한 분씩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작년 마지막으로 거주하던 100세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나자레원은 문을 닫고 일반 복지시설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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