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경숙 울진군 태원 예다 문화 연구원 원장 인터뷰 모습. 원형래 기자
"교육기관마다 다기(茶器)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무거운 다구를 직접 준비해 다니는 과정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과 마주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는 순간 그 힘듦을 모두 잊습니다. 그 시간이 저에게는 가장 큰 행복입니다."
임경숙 울진군 태원 예다문화연구원 원장이 차(茶)를 대하는 마음이다.
임 원장에게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차 자리를 준비하며 상대를 생각하고, 한 잔을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 속에 배려와 감사, 정성과 예절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차인연합회에 소속돼 있는 임 원장은 사단법인 경북예절다도교육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경북예절다도교육회는 경북 22개 시·군에서 활동하는 예절·다도교육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찾아가는 인성·예절교육과 전통 차 문화 보급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울진에서는 태원 예다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주민과 학생, 어르신 등을 대상으로 차 문화와 예절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임 원장은 결혼 후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우연히 차 공부를 시작했다. 오랜 시간 차와 예절을 배우고 가르치면서 언젠가는 고향에서 자신이 익힌 문화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고, 2022년 울진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제가 배우고 익힌 차 문화를 고향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차를 마시는 방법뿐만 아니라 배려와 감사, 사람을 대하는 예절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 "차는 특정한 사람만 즐기는 문화가 아닙니다"
임 원장은 울진문화원과 평생학습관 등 지역 여러 기관에서 차 문화와 예절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교육기관에는 차를 우리고 마시는 데 필요한 다기와 다구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아 직접 장비를 준비해 수업하는 경우가 많다.
"다기가 없는 곳에서는 제가 직접 준비해서 갑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주민들과 차 한 잔을 나누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힘듦은 금방 잊게 됩니다."
그는 주민들이 '다도'라는 말을 너무 어렵고 격식 있는 문화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임 원장이 수업시간마다 자주 하는 말은 '다반사(茶飯事)'다.
"밥을 먹듯 차도 자연스럽게 마셨으면 합니다. 차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자신을 돌아보는 쉼의 시간도 가질 수 있습니다."
차 한 잔의 짧은 시간이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주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임 원장의 생각이다.
■ 차에 담긴 '중용'과 '일기일회'
임 원장이 중요하게 여기는 차의 정신은 '중용(中庸)'과 '일기일회(一期一會)'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지금 만나는 사람을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인연처럼 여기며 정성을 다하는 것이 차 문화의 본질이라는 설명이다.
"차는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차 자리를 준비하면서부터 상대방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이 다시 만나지 못할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배려와 감사의 마음이 생깁니다."
임 원장은 이러한 차 문화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힘도 있다고 말했다.
야간 수업에 참여했던 한 수강생은 카페인에 민감해 차를 거의 마시지 못했지만 차 자리가 좋아 꾸준히 수업에 참석했다. 이후 평소 시험을 볼 때마다 심하게 긴장하던 자신이 차 수업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고 결국 시험에 합격했다고 임 원장에게 전했다.
임 원장은 "차를 마시는 것 이상으로 그 자리에 함께하는 과정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 구치소·장애인시설까지 찾아간 차 한 잔
임 원장의 차 문화 활동은 강의실에만 머물지 않았다.
대구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구치소와 장애인 관련 기관 등을 찾아 차 문화 교육과 나눔 활동을 이어갔다.
구치소에서는 처음에는 차 수업을 낯설어하던 교육생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을 열었고, 차를 통해 감사하는 마음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교육이 끝난 뒤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인연도 있었다.
장애인들과도 한 기관에서 10년 이상 꾸준히 수업을 이어간 경험이 있다.
울진으로 돌아온 뒤에는 보건소 등과 연계해 인지·정서적 지원이 필요한 주민과 고령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차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어르신들이 임 원장을 기다리며 반갑게 맞을 정도로 차 수업이 하나의 소통 시간이 됐다고 한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앉으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더라도 차를 나누면서 공감대가 만들어집니다. 그것이 차 문화의 힘입니다."
지난해 울진 차 문화 축제장 모습.<원형래기자>
■ 회원들 자비로 시작한 차문화축제
임 원장은 2025년 회원들과 함께 울진에서 군민과 관광객이 참여하는 차문화축제를 열었다.
연어공원 잔디밭에 약 15개의 차 자리를 마련하고 회원들이 직접 차와 다식을 준비했다. 상당 부분 회원들의 자비와 봉사로 진행했지만 군민과 관광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차문화축제와 차 나눔 행사, 전통차 체험프로그램이 울진의 새로운 문화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다만 개인과 회원들의 봉사만으로 지속적인 행사를 이어가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지방자치단체의 관심과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차 문화를 울진 관광콘텐츠로 만들고 싶습니다"
임 원장이 앞으로 가장 추진하고 싶은 목표는 차문화를 울진의 역사와 관광자원, 전통음식과 연결하는 것이다.
울진을 찾은 관광객이 지역의 역사문화 공간을 둘러보고 전통차와 지역 음식을 함께 체험한다면 단순한 관광을 넘어 울진만의 이야기를 담은 문화관광 프로그램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지역의 한옥이나 서원 등 활용 가능한 전통공간을 차 문화 체험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차문화축제와 차 나눔 행사, 전통차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현대인에게 맞는 차 생활을 알리고 싶습니다. 여기에 울진의 역사와 관광자원, 전통음식을 연결한다면 울진을 알리는 훌륭한 관광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차(茶) 문화 축제는 지역 경제를 견인하는 핵심 관광 자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경남 하동군의 '하동야생차문화축제'는 지난해 약 3만 5천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며 36억여 원의 직접 경제효과를 창출했다 . 특히 이 축제는 올해 '대한민국축제콘텐츠대상' 축제 경제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입증했다.
울진군 역시 임경숙 원장과 회원들이 자비로 시작한 차문화축제를 지자체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과 결합한다면, 지역 역사와 전통음식을 아우르는 새로운 6차 산업 관광 모델로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 "밥상머리 교육처럼 '차상머리 교육'을"
임 원장이 특히 강조하는 또 하나의 방향은 '차상머리 교육'이다.
과거 대가족 시대에는 부모와 조부모의 행동을 보며 자연스럽게 예절을 배웠지만 핵가족화와 바쁜 생활로 이런 기회가 줄었다는 것이다.
임 원장은 거창한 다구가 없어도 찻잔 하나, 티백 하나만 있으면 가족이 차 한 잔을 나누며 예절과 배려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우리 차 한 잔 같이 마시자'고 하고 함께 앉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어른에게 먼저 차를 권하고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작은 행동이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인성교육이 됩니다."
임 원장이 그리고 있는 울진의 차 문화는 거창하지 않다.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교육기관에서는 아이들이 예절과 배려를 배우며, 한옥과 서원에서는 관광객들이 울진의 역사와 함께 전통차를 경험하는 모습이다.
"차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좋은 차나 비싼 다구보다 중요한 것은 따뜻한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울진에서 밥을 먹듯 자연스럽게 차를 마시는 '다반사' 문화가 자리 잡고, 차문화축제와 전통차 체험이 울진을 알리는 관광문화콘텐츠로 성장했으면 합니다."
원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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