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거리도 깨끗하고 질서 정연하다고 알려져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쓰레기 무단 투기를 단속할 정도로 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 거리가 더럽다는 것은 아니다. 약간의 질서 혼란에 대한 사전 단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임 원장 제공
1년간의 게이오대학 방문연구원 생활이 끝났다. 병원을 잠시 쉬고 떠난 이유는 앞으로 방향 전환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일의 성취를 위해서 살아왔다. 병원을 경영하고 학술적인 성취를 이루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앞으로 지금까지 하던 대로 환자를 더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홀했던 부분들을 하고 싶었다. 의료는 치료, 돌봄이 있다. 지금까지 유방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에 주력하면서 돌봄이 소홀했다. 암이나 어려운 병에 걸리면 환자들은 비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당황한다. 이런 환자들을 차분히 상담하고 위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제는 점차 이런 돌봄 시간을 늘리도록 환자 보는 방향을 바꾸려고 한다. 일본에서 가정 방문 진료, 홈 호스피스로 유명한 고후시 나이토 이즈미 선생을 찾아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방문 진료 현장을 같이 가고 한국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아이디어도 얻었다. 경험을 듣고 자료를 받고 앞으로 연락을 하면서 고민을 같이 공유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본 사회에 대한 관찰이다. 지금까지 관광객으로 일본을 방문하면서 막연히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또한 많은 것을 잃었다. 우린 너무 거창한 것에 열 올리면서 힘을 빼는 것은 아닌지? 자기 맡은 일은 열심히 하고 있는지? 남의 실수를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는 있는지? 한 단계 더 성숙한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런 디테일도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일본은 우리보다 선진국이다. 우리와 역사적, 사회적으로 얽힌 부분을 개인이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2주에 한 번씩 신문에 칼럼을 쓰게 되었다. 가능하면 새로운 시각으로 일본을 바라보는 관점을 쓰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곳을 답사했다.
버스나 택시를 타면 한국보다 편안했다. 완전 정차 후 일어서고, 동전을 세느라 느려도 다그치지 않았다. 관공서의 기다림에도 모두 느긋했다. 질서를 잘 지키고 조용하고 예의가 있었다. 거리는 깨끗했다.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은 정성을 다해서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느린 것 같아도 편안했고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중심되는 문화를 찾아 다녔다. 교토의 기모노, 오비 장인을 만나서 장인 정신이 어떤 것인지 듣고 감탄을 했다. 긴자의 가부키, 노 공연을 찾았다. 평일 낮, 3시간의 긴 시간, 최정상 클래식 공연과 비슷한 비싼 관람료에도 관중은 만원이었다.
일본치안은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변두리 곳곳에는 도둑을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생활형 범죄이다. 현실 사는 것이 여유가 없다는 얘기이다. 임 원장 제공
시간이 지나자 이런 장점들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여유로움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라 오랜 사회 규범, 매뉴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공연장이나 운동경기장을 가도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여야지 좋다고 박수치고 벌떡 일어나는 것은 제지되었다. 종이를 사용하고 팩스를 이용하는 것에 답답함이 느껴졌다. 배워야 할 부분은 맞지만 나에게 남은 인생 어디가 살기 편한가 묻는다면 한국에 살고 싶었다. 요즘은 일본도 거리에 쓰레기 버리는 일이 많아서 사람들이 붐비는 시부야에서는 단속을 하고 벌금을 매겼다. 언론에서 나오는 어깨치기를 나도 당했다. 나는 앞을 보고 걸었고 반대쪽에서 오는 젊은이가 부딪침 없이 갈 것 같았는데 강하게 밀치고 갔다. 인사를 하지도 않았다. 젊은이들이 사회에 분노가 있다고 했다. 서민들 삶은 우리보다 못했다. 30년 동안 공무원으로 근무해도 연금은 230만 원이고 의료보험료는 높고 교통비도 비싸다. 노인도 지하철 할인이 없다. 우리 노인은 하루 1만원이면 시내에 나와서 커피, 점심까지 해결하지만 여기는 4만~5만원이 들기 때문에 시내에 노인이 없다.
일본을 관찰할수록 모국의 장점이 보였다. 일본의 전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판소리 완판이나 궁중 정악, 한국 전통 무용을 제대로 본 적이 있던가?' 개화기 일본 선각자들 발자취를 찾아가면서 망해가는 조선을 살리고자 피눈물을 흘린 선조들의 발자취도 보았다. 못난 조상이 아니었다. 앞으로 내 역할을 잘하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긴 시간 지면을 내어준 영남일보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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